[한박사의 부모고민상담]성적 비관하는 학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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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중학교까지는 성적이 꽤 상위권에 속했는데 고등학교 입학후 밑바닥을 맴돌고 있어요. 아이는 성적 때문인지 자기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면서 소리를 지르곤 합니다.

아이 일기장을 보았더니 온통 죽고싶다는 말만 써 놓았어요. 아이가 자살이라도 시도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떻게 아이를 타이를수 있을까요. 이혜정 (서울서대문구홍제동)

아이가 공부를 잘하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좌절하고 비관하기 쉽습니다.

특히 본인은 열심히 공부 하는데도 성적이 떨어지면 그 좌절감은 더욱 커지지요. 그동안 공부 잘하는 것으로 부모에게 인정받아왔던 아이는 남에게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부모가 실망하게 되는 점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이때 부모는 누구보다 아이가 제일 속상해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고 얼마동안이라도 매사를 공부와 연결시키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학습습관을 되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고쳐나갈수 있도록 유도하세요. 가령 스스로 공부하기보다 과외나 부모의 강요에 떠밀려서 공부해 왔다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들도록 도와주고 수학이나 영어등 특정한 한과목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보충학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겠지요. 하지만 공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아이의 방법이 폭력적이거나 부모.친구와의 대화가 단절된다면 일반적인 부모설득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식음전폐나 자주 죽음을 얘기하는등 자살의 가능성이 심각하게 보여진다면 가능한한 빨리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럴때는 부모가 우선 아이 성적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합니다.

즉 아이가 자살하거나 정신병으로 평생 시달리는 것보다는 공부 못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지요. 부모가 진심으로 공부에 대한 기대를 끊으면 부모의 태도나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됩니다.

겉으로는 공부 못해도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공부 못하는 사실을 쉬쉬하며 창피하게 여기거나 하면 아이는 드러낸 문제를 감추기 위한 가식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고 부모에 대한 불신의 벽만 쌓아가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 성적에 대한 기대를 버린 다음 아이로 하여금 현재 상황을 수용하도록 도와주세요. 우선 아이와 짧은 여행이나 전시회 등에 가서 아이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볼수 있도록 해주세요. 이때 공부에 대한 대화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수고등학교와 같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몰린 경우에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고 근소한 차이로도 꼴찌가 될수 있으므로 아이자신도 꼴찌가 될수 있다고 입학하기 전부터 미리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1등은 1등대로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까 늘 불안한데 꼴찌가 됐으니 오히려 마음 편하게 한 계단씩 올라가 보자고 하세요. 성적이 조금이라도 향상되면 축하를 해주고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세요. 이제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사회에서 출세하는 시대가 아님도 알려주세요. 살다보면 안되는 일도 있고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처럼 성인이 되기 전에 일찍 경험해서 어려움에 대한 준비와 훈련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주세요.

한숙자〈교육심리학박사.연세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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