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한미 골깊은 시각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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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이 급기야 슈퍼301조를 발동하고 나서자 국내여론은 즉각 흥분하는 분위기다.

내용을 따져볼 것도 없이 "흑자국이 적자국에 대해 그럴 수 있느냐" 는 비난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온다.

그러나 흥분할 일이 아니다.

싸움은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협상과정에서 우리측이 어떤 실책을 저질렀는지, 또는 미국의 속셈이 무엇이었는지는 차차 밝혀질 일이다.

이번 기회에 한.미통상마찰에 깔려있는 문제의 본질을 보다 정확히 파악해 냉정하게 대처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우선협상대상국관행 (PFCP) 지정으로 당장 한국자동차의 대미수출에 타격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쌍무간에 벌였던 실무자간의 '조용한 협상' 은 깨지고, 본격적인 줄다리기를 시작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최악의 경우 미국이 무역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도 과거처럼 한국을 만만하게 볼수만은 없게 돼 있다.

한국으로서도 그 부당성을 세계무역기구 (WTO)에 제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의 협상에서 얼마나 한국의 입장을 관철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한.미간 무역마찰은 자동차때문에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표면상으로 미국은 한국에 대해 "수입자동차에 대한 제도적 또는 사실상 한국의 무역장벽을 낮추라" 는 요구를 하고 있다.

또 이에 대해 한국은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시장을 많이 열었다" 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양국간 입씨름의 밑바탕에는 무역을 보는 양국간 시각차이가 자리잡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한국이 주장하는 "우리나라는 열려 있다" 는 말을 믿지 못하고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정부가 직.간접으로 개입, 과소비운동등 민간의 반 (反) 수입적인 관행을 부추긴다" 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수입자동차의 비중이 1%도 되지않는 것은 한국시장이 닫혀 있다는 증거라는 생각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한국이 무슨 변명을 해도 현실적으로 미제차가 안 팔리고 있는 것은 한국정부가 수입규제를 계속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한국은 향후 1년내지 1년반동안 지루하게 전개될 양국협상에서 한국의 통상정책에 대한 신뢰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측에 대한 성실한 설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한국의 제도와 상관행이 그에 부합되도록 개선돼야 한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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