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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검사 거쳐야 판사 임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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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르면 2006년부터 변호사.검사 가운데서 판사를 뽑는 제도(법조 일원화)가 부분적으로 도입될 전망이다.

또 3년제 법학 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새로운 법조인 양성 및 선발 제도로 대체되고,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陪審).참심(參審)제 가운데 한 가지가 추진된다. 그러나 일반 시민이 유.무죄에 대한 평결을 내리는 배심제나 일반 시민이 판사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재판 심리에까지 참여하는 참심제는 지연.학연 등 연고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의 특성에 비춰 부작용이 우려된다.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위원장 조준희 변호사)는 21일 이 같은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개위는 올해 말까지 최종안을 확정해 노무현 대통령과 최종영 대법원장에게 보고한다. 사개위 안이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 심의를 거쳐 최종 입법화되면 로스쿨의 신입생 선발과 배심.참심제 시행은 이르면 2006년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 일원화와 관련, 사개위는 시행 첫해에는 신임 판사의 10~20%를 변호사나 검사로 5년 이상 근무한 사람 가운데 선발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 2012년께 50%까지로 임용 비율을 높이고 제도가 정착되면 전면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사개위는 그동안 ▶대법원의 기능과 구성▶법조 일원화와 법관 임용방식 개선▶법조인 양성 및 선발▶국민의 사법 참여(배심제.참심제 등)▶사법서비스 개선▶민사재판 개선 방안 등을 논의해 왔다.

◇로스쿨 도입=현재 사개위 내에선 미국식 3년제 로스쿨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로스쿨 1개당 200여명의 정원을 두고 전체 입학정원을 연간 3000~3500명으로 유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로스쿨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 논리력 등 법학 수료에 필요한 기초적인 소양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한 뒤 3년간 실무 위주의 법학교육을 실시하고 수료자에게 변호사 자격증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박상기(연대 법대 교수)사개위 제1분과위원장은 "연말까지 로스쿨 도입에 합의가 이뤄질 경우 이르면 2~3년 내에 로스쿨 신입생을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법원 개혁=우리나라 대법원은 연간 1만8000여건의 사건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맡고 있다. 대법관 1명이 한해 1500여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이 사건의 처리에도 급급해 법령 해석을 통일하는 최고 법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상고를 제한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소송가액.중요성 등을 감안해 일정 사건에 대해 상고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두어 상고사건을 맡게 하거나, 대법관의 수를 늘리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법조 일원화=사개위는 일정 기간 변호사.검사 등으로 활동한 법조인 가운데 판사를 선발하는 '법조 일원화' 제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사법연수원 수료생 가운데 판사를 임용해 왔다. 이 때문에 판사의 사회경험이 너무 적어 당사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재판에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럴 경우 기존의 서열 중심 법원 인사시스템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사법서비스 개선=구속적부심.구속집행정지.구속취소 등 복잡한 석방제도를 간편하게 재정비하고, 금전 외에 신원보증 등으로도 보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도 고려되고 있다.

악의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실제 입은 손해액보다 더 많은 배상을 명령하는 징벌적 배상제도, 경미사건의 처리를 위한 간이 법원 설치도 사개위 안건으로 상정돼 있다.

하재식 기자

[뉴스분석] 학연·지연에 휘둘릴 우려…참심.배심제 현실성 논란

사법개혁위원회가 일반 시민의 재판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검토 중인 배심제.참심제가 우리 현실에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배심제의 경우 배심원들이 사실에 입각한 법률적 판단을 소홀히 한 채 여론, 자신의 가치관, 혈연.학연.지연 등에 좌우돼 평결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배심제는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유.무죄에 대한 평결을 내리면, 직업 법관이 평결 결과에 따라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배심원 후보는 선거인 명부 등을 기초로 해당 법원에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한다. 피고인이 법관에 의한 재판과 배심원 재판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홍기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은 "우리 사회에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데다 각종 연고(緣故)가 재판 과정에 개입될 수 있어 배심제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정상진 변호사도 "피고인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평결을 끌어내고자 배심원들에게 '줄'을 대려는 행태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심제의 실질적 효과도 의문시된다. 미국 미식축구 선수 O J 심슨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배심원들은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심슨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하지만 심슨 부인의 가족이 심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사건에선 심슨이 패했다. 민사사건에선 살인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 법원의 판단이 달라져 국민적 혼란만 부추긴 셈이다.

또 미국에서 피고인이 배심재판을 선택한 경우가 4%도 채 안 된다. 봉욱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은 "배심제는 비용과 소요인력이 너무 많이 들어 나머지 사건들이 부실하게 심리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참심제는 일반 시민이 직업 법관과 동등한 권한을 갖고 유.무죄 및 형량을 결정하는 제도로, 주로 유럽에서 실시되고 있다.

참심제는 참심원들이 법관이 판결을 내리는 데 '들러리'로 설 공산이 큰 데다, 일부 참심원의 권한 남용이 우려되는 게 단점이다.대한변협 김갑배 법제 이사는 "참심제를 채택하는 나라들의 경우 참심원 숫자가 너무 적어 국민의 사법 참여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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