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이름' 학급 푯말에 아이들 반응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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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에 있는 영림초등학교는 새학기와 함께 새로운 실험 하나를 진행 중이다. 학급 이름에 1, 2, 3반 등 숫자가 아닌 담임교사의 이름을 적는 ‘담임실명제’다. 가령 ‘1학년 1반’이 아니라 ‘1학년 ○○○선생님반’이 되는 것이다.


9일 오후‘5학년 주성숙선생님반’ 학생 25명을 만났다. 이 가운데 1학년때 담임 선생님 성함을 기억하는 학생은 10명에 불과했다. “몇반이었는지는 생각나는데…”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담임실명제’에 대해 학생과 교사ㆍ교장은 각각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반 찾기 어려웠지만….”=2일 새 교실에 들어온 학생들은 대부분 “숫자가 없어서 반을 찾기 어려웠다”“다른 반 친구를 만나러갈 때 헷갈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 ‘성함’이 새겨진 반 푯말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주일이 지난 지금은 담임실명제에 대해 거부감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5학년 주성숙선생님반’ 의 한규호군은 “어른이 되서도 선생님 이름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 같다”고 말했다. 양소현양은 “처음엔 선생님이 다른 반에 심부름을 보낼 때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몰랐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른 반 선생님 이름도 모두 기억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예환군은 “우리들을 잘 가르치려고 선생님이 이름을 (푯말에) 적었다고 하는데 많이 부담스러우실 것 같다”며 선생님 걱정까지 했다.

이 밖에도 “선생님 이름을 걸고 공부하니까 자랑스럽다”(박선영양), “다른 반 친구들이 몇 반이냐고 물으면 주성숙선생님반이라고 해야 하니까 행동을 바르게 하게 된다”(한해연양),“예전 담임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을 때 몇학년 몇반으로 가셨는지 몰라도 이름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이태용군) “숫자 대신 이름으로 바꾸니까 선생님이 우리들을 더 잘챙겨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오민석군)는 의견도 있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담임 선생님이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을 잘 이끌어 줄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었다.

◇“25명이 내 이름 쓸 텐데….”=‘5학년 주성숙선생님반’의 주성숙 담임교사는“내 이름을 평생 기억할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주겠다”며 “매일 아침 내 이름이 쓰인 학급 푯말을 보면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

주 교사는 또“한글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저학년생 일부가 반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다”면서도 “담임실명제를 시작한지 1주일밖에 안 됐지만 그때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영림초교에서 학기 초 나눠주는 학습장 노트에도 담임교사의 휴대폰 연락처가 적혀 있다. 주 교사는 “학부모들이 아이에 대해 언제든지 전화해 상담할 수 있게 교사들이 개인 연락처를 공개하기로 했다”며 “학부모와 더 긴밀한 사이가 되면 아이들을 지도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시험을 볼 때 아이들이 학년,반,이름을 쓸 것이다. 내 이름을 25명의 아이들이 쓴다고 생각해보라. 한명 한명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우수한 아이는 상을 주겠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도 더욱 신경을 쓸 것 같다”고 말했다.

◇“잘해도 교사 몫, 못해도 교사 몫”=이경희 교장은 “3년전부터 초등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인성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담임실명제를 고안했다”며 “학급 이름에 담임의 이름을 적으면 교사는 책임의식을 갖고 아이들을 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학부모와 학생에게 신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교권옹호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교장은 “교사 이름과 명예를 걸고 수업하는 것이 결국 교사의 권익 신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교사는 한 학급을 운영하는 주체로 자신의 이름을 달고 학급을 이끌어가고 지도할 것이고 잘해도 그의 몫, 못해도 그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ㆍ동영상=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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