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진단과 해법-릴레이 인터뷰 ⑧ 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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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추경예산이 불가피함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경제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에도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 전에 정부·여당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기 예측을 잘못해 지금과 같은 세수 결함이 생긴 것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추경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토목·건설보다는 일자리 지키기와 서민 생계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난 사람=박태욱 경제담당 대기자

-은행법 개정안이 결국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산업자본의 은행 주식 보유한도를 4%에서 10%로 높인다는 여당안에 야당이 끝까지 반발했습니다. 이 숫자에 큰 의미가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산업자본의 투자 비율을 높이는 것엔 동의합니다. 그런데 10%라는 게 갖는 정치적 함의가 큽니다. 한나라당 입장을 100% 반영했다는 것이죠. 또 10% 지분이면 사실상 (은행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8%를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 당시 그 비율로 한 적이 있으니 일단 그렇게 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자금을 가진 이가 은행 자본 확충에 참여할 수 있는 길 자체를 막아선 안 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이슈는) 산업자본의 참여를 몇%로 하느냐, 그리고 사모펀드(PEF)와 공적 연기금의 참여를 허용하느냐는 것입니다. 일단 PEF는 상당한 제한을 해야겠다는 게 우리의 입장입니다. 견제장치가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 공적 연기금의 경우 관치금융을 막기 위해 의결권에 제약을 둬야 합니다. 산업자본 투입에 대해선 어느 정도 융통성을 두자고 정리했습니다. 자본 확충의 길을 열어주면서 정부의 사금고화 가능성을 막아야 하는 두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실제로 사금고화의 우려가 큽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당에도 예전에 장관 했던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 대기업이 은행에 투자했을 때 지분율이 얼마 안 돼도 인사권을 쥐었다고 합니다.”

-야당이 발목만 잡는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1000억 달러 규모의 은행지급보증 동의안을 이틀 만에 처리해줬습니다. 추경을 편성할 수 있도록 국가재정법 개정에도 협조했습니다. 2월 국회에서도 은행법을 뺀 경제 관련 법안은 모두 처리해줬습니다. 한나라당이 (야당 때) 했던 것보다 100배는 잘해주고 있습니다.”

- 금융위기 발생부터 현재까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한마디로 ‘747 공약’에 집착하면서 처음부터 어긋났습니다. 7% 경제성장에 집착해 고환율 정책을 쓸 때부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국민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데 (장관을) 교체하지 않고 6개월 더 끌었던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현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시장에선 일단 긍정적 신호가 있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색깔이 분명히 나타나지 않았지만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으니 시장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개인적 소신도 좋지만 그에 너무 치우쳐 다른 이야기에 귀 막으면 제2의 강만수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추경에 대한 입장은 어떻습니까.

“추경의 불가피성은 인정합니다. 규모가 좀 커지는 것도 불가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용도가 문제입니다. 추경에 대한 민주당의 대책도 마무리 단계입니다.”

-어디에 집중해야겠습니까.

“추경 세출은 중소기업 긴급자금 지원, 서민 일자리 창출, 긴급실업 구제, 서민생계 지원 등에 국한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정부가 토목공사 위주의 ‘녹색뉴딜’을 일자리 사업으로 포장해 편성하는 것은 반대입니다. 각종 통계를 보더라도 액수 대비 일자리 창출 면에서 토목건설보다는 사회복지 사업의 효과가 더 큽니다. 재원 마련도 문제입니다. 종합부동산세법 개정 등을 늦춰 시행하는 한편 각종 경비를 더 줄이고 세출을 깎아 적자 국채 발행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 정부에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위기관리 능력의 위기’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남북 간에 긴장감이 조성되면서 원화가치와 주가도 폭락하지 않았습니까.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만 아니면 된다)’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과거 정부를 모두 부인하면 안 됩니다.”

-그 부분은 남북관계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외국의 달러 빼내기 탓은 아닙니까.

“‘스몰 오픈 이코노미(소규모 개방경제)’의 한계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부의 문제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정리=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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