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일본 신방위지침 개정 의미…일본 군사대국화 본궤도 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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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없는 것보다 나은 정도다. "

일본의 외무.방위정책에서 보수계 입장을 대변하는 오카자키 (岡崎) 연구소는 새 미.일방위협력지침 (가이드라인)에 대해 유사시의 대응이라는 '반동적 (reactive)' 측면만 강조됐을 뿐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사전행동적 (proactive) ' 처방전이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미국과 함께 세계질서 유지에 주동적으로 참가해 정치력을 발휘하기를 희망하는 대부분의 보수세력들은 새 지침이 확정된 것을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아쉬움도 나타내고 있다.

혁신세력들은 이와 반대로 새 지침 자체를 비판하고 나섰다.

후와 데쓰조 (不破哲三) 일본공산당위원장은 22일 열린 제21차 당대회에서 "새 지침은 사실상 일본의 자동참전체제를 굳힌 것" 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일 양국정부는 이번에 확정된 새 지침을 국회에 제출한 후 한국.중국등 주변국에도 내용을 알리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그러나 "미.일방위협력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사전협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일본자위대의 분쟁개입을 기정사실화한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본군사력이 본토에서 주변지역으로 확대되는 최초의 법적 근거가 될 것" 이라는 한국.중국측의 경계자세는 확실하다.

싱가포르.필리핀등 다른 아시아국가들도 아태지역의 안보를 위한 미국의 역할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이 확대되는데는 한결같이 우려하는 모습이다.

새 지침에는 먼저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지난 6월의 중간보고때까지는 새 지침이 적용되는 '일본 주변' 의 범위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이번에는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지리적 개념이 아니다" 는 내용을 명기했다.

재외일본인 구출문제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금까지 "양국은 각각 자국민의 피난에 책임을 진다" 고만 돼 있었으나 미국이 일본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여 "미군이 재외일본인 수송에 협력한다" 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일본은 "현행 헌법상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는 곳에는 자위대기를 보낼 수 없다" 는 점을 내세웠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은 정부전용기나 전세기등을 동원해 자국민을 구출하기로 돼 있으나 사태가 악화되면 미군의 협조를 구하게 된다.

'선박임검' 은 그 범위를 공해상으로 한정한데 이어 "유엔의 결의에 따른다" 는 조항을 덧붙였다.

전투가 벌어질 위험성이 큰 임검은 헌법의 '집단자위권 금지' 조항에 저촉될 소지가 있어 2중의 '안전핀' 을 설치했다.

평시의 훈련과 분쟁시 대규모의 지원병력을 불러와야 하는 주일미군은 일본 국내의 민간공항과 항만의 제공을 강력히 요구했다.

한반도 분쟁초기에 즉각 1만5천명 정도의 병력과 항공기.군함.각종 병기등을 증강해야 하는 미군으로서는 인원및 물자수송의 중계기지로 민간시설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미.일지위협정상 지금도 미군이 민간공항.항만을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유사시' 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적의 공격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지역주민들의 우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선뜻 민간시설 사용을 허락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올 들어 나가사키 (長崎).사세보 (佐世保) 항등 민간항만에 미국함선의 입항이 부쩍 늘어나자 지역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새 지침은 일단 확정됐으나 이에 따른 '국내법 정비' 와 '공동작전계획' '상호협력계획' 등 많은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특히 새 지침의 중점이 한반도 유사시에 가장 많이 놓인 만큼 당사국인 한국과의 조정과정이 빠져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번 지침의 후속타로 '방위대강' 정비와 '시레인 (해상교통로)' 방위대책 수립에 나설 계획이다.

이것이 마무리지어지면 동아시아 안보에서 차지하는 일본의 영향력은 크게 팽창할 수밖에 없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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