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당후보 강연]합동연설 안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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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일보 주최 4당 대통령후보 초청 강연회는 대선을 87일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처음으로 경륜과 기량, 정책과 비전을 겨룬 한판 대결의 장 (場) 이었다.

형식에서부터 파격적이었다.

87년, 92년 선거의 경우 교육.경제등 특정 주제를 놓고 후보들이 토론하거나 강연한 적이 있었을 뿐. 국정 전반에 관해 후보들이 한자리에서 역량을 겨룬 것은 초유의 일이다.

예상대로 '비공인 (非公認)' 이긴 했지만 첫 합동연설회가 된 이날 강연회에 후보들은 하나같이 적극적 자세로 나왔다.

"누가 대통령감인지 연설로 결판내자" 는 결의가 넘쳐 흐르는 듯 했다.

이회창 (李會昌) 후보와 김대중 (金大中) 후보간의 3金정치 청산 공방, 김종필 (金鍾泌) 후보와 조순 (趙淳) 후보간의 내각제 찬반 논쟁등은 후보들이 얼굴을 맞대는 합동연설회에서만 맛볼 수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케 했다. 李후보가 3金정치.낡은 구시대 정치의 타파를 역설하자 김대중후보는 "정치를 오래 하지 않았다고 참신하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것" 이라고 바로 맞받아쳤다.

김종필후보의 내각제 주장에 조순후보는 즉각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요구로 반격을 가했다.

대선 분위기가 고조되는 시기적 특징, 여야 핵심인사들이 뒤섞인 청중으로 한 공간적 특수성 앞에서 각 후보들은 정치적 존립근거와 자존심을 걸고 치열한 연설대결을 벌인 것이다.

후보들은 강연에 앞서 홍석현 (洪錫炫) 중앙일보사장과 환담하면서 "근자에 이런 토론회가 없었다" 며 일전 (一戰) 을 예고했는데, 실제 촌철살인 (寸鐵殺人) 의 비유와 당당한 논리가 교차했다.

이번 강연회의 소득으로 빼놓을 수 없는게 '21세기 국가경영 과제와 방향' 이란 주제에 맞춰 각자의 비전을 제시하려는 노력들. 이회창후보는 "새로운 천년이 열리는 대 전환점에서 국민 대통합의 정치" 를, 김대중후보는 "새로운 천년대 (Millenium) 를 맞아 국정 전반에 '준비된 역량' 을 가진 대통령" 을 역설했다.

김종필후보는 21세기의 화두를 내각책임제 개헌에서 찾았고, 조순후보는 21세기 선진국들과 어깨를 같이 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를 역설했다.

22일 토론은 이처럼 대선 정국의 주 쟁점방향을 뚜렷이 하는 한편 후보간 합종연횡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짐작케 해줬다.

실정 (失政) 과 3金청산을 놓고는 집권당 후보와 두 金후보가, 권력분점을 놓고는 여야 주요 3당 후보와 趙후보등 후발주자간의 공방이 가열될 것이라는등. 아무튼 이번 강연은 '건설적인 다툼' 의 한 모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기록할만 하다.

김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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