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G 전 CEO의 적반하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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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호 30면

AIG의 전·현직 경영진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다. 세계가 그들이 일으킨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그들이 리스크를 무시하면서 벌인 머니게임이 화근이다. 이 게임의 희생자는 바로 미국 납세자다. AIG에 이미 1500억 달러를 지원한 미국 정부는 최근 30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해 주기로 했다. 앞으로도 돈을 더 주입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화를 냈다. 그는 상원에 출석해 “AIG가 법규의 허점을 악용해 무책임하게 도박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AIG 사태의 책임자 리스트에서 빼선 안 될 사람이 한 명 있다. 모리스 그린버그다. 그는 2005년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 자리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그가 사태의 주범이다. 이런 그가 지난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을 뒤이어 AIG를 운영한 에드워드 리디 등 현 경영진 때문에 20억 달러를 손해 봤다고 주장했다. 친정을 향해 배상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2005년 3월 AIG 이사회는 그린버그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뉴욕 검찰이 불법 혐의를 잡고 수사에 착수한 게 이유였다. 그가 쫓겨난 뒤 그의 혐의 대부분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러자 그린버그는 20년 동안 이끌었던 회사를 상대로 분풀이하기 시작했다. 그는 AIG의 현 경영진이 자신을 비롯한 주주들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미래가 아주 밝다고 주장했는데, 정작 회사가 쓰러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CEO 리디를 향해서는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리디, 당신은 작은 보험회사나 경영할 인물이지 AIG 같은 글로벌 기업을 운영할 인물은 아니다”고 퍼부었던 것이다.

그는 온갖 노력을 기울여 AIG를 세계적인 보험회사로 일궈 놓았다. 하지만 뒤이은 경영진의 잘못으로 AIG는 정부에 생존을 구걸하는 신세가 됐다. 이런 AIG를 보고 그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주가가 1년 만에 48달러에서 43센트로 폭락하는 사태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사실 AIG를 위험에 빠뜨린 장본인이 바로 그린버그 자신이었다. 그가 파생상품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린버그의 말 한마디에 AIG는 아주 신기한 파생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부서를 신설했다. 회사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등 파생상품과 관련된 보증보험을 마구 팔기 시작했다. 그 보험 덕분에 실상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자산들이 아주 우량한 자산으로 분칠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리스크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간부를 내쫓기까지 했다

최근 AIG는 그린버그가 재임 중 저지른 잘못 때문에 미 정부에 18억 달러에 이르는 벌금을 납부했다. 그린버그는 위기에 빠진 한 미국 기업의 CEO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듯하다. 바로 GE의 제프리 이멜트다. 이멜트는 지난주 주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가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GE 명성이 퇴색했다”고 고백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책임을 통감한다”고 몸을 낮췄다. 그린버그가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AIG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것이 수많은 피해자에 대한 도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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