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와인의 나라 프랑스 “음주 개혁은 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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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에서 최근 ‘공짜 술’ 논쟁이 일고 있다. 프랑스에선 주류 회사가 판촉용으로 술집에서 공짜로 술을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술집도 손님을 끌기 위해 메뉴 하나만 시키면 술을 무제한 마실 수 있도록 하는 곳이 있다. 이를 ‘오픈바(open bar)’라고 부른다. 지난해 말 프랑스 정부는 보건복지법안을 만들면서 “판촉용으로 무제한 공짜 술을 주는 행위와 메뉴용 공짜 술 제공을 금지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정부는 “오픈바가 젊은 층의 폭음을 조장하기 때문에 막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거센 저항이 일고 있다.

와인 제조업자 모임인 ‘와인에 관한 네 가지 진실’ 측은 “왜 정부는 와인을 마시면 건강에 해롭다고만 하는가. 와인에는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폴리페놀 등 건강에 유익한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선 “가뜩이나 프랑스산 와인 소비가 줄고 있는 마당에 정부가 와인 산업 죽이기에 나선 거냐”는 불만도 나왔다. 젊은이들은 ‘술 마실 자유’를 주장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20minutes)에는 “돈 없는 젊은이는 술 마시지 말고 돈 많은 나이 든 사람만 마시라는 것인가”라는 댓글이 올랐다.

“뭐든지 법으로 하려는 사르코지식 발상”이라는 정부 비판까지 일고 있다. 또 파티에서 술을 무료로 제공하는 코너 역시 ‘오픈바’로 부른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파티 습관까지 없애려는 것이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거센 비판에 몰린 프랑스 정부는 “술을 더 팔기 위한 판촉용 공짜 술만 막겠다”면서 “규제 대상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법안을 수정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국민의 술 습관을 바꾸는 ‘음주 개혁’이 가장 힘들다. 60여 년 전 노동자들이 작업장에 와인을 가져와 점심시간에 마시는 바람에 사고가 빈발했다. 그러자 정부는 1956년 직장에서 와인을 마시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 시절에는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국민은 “식사하면서 와인 안 마시는 프랑스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당당하게 따져 물었고 결국 흐지부지됐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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