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직격인터뷰-주철환] ① "OBS서 고통" 임기중 후임거론 토사구팽 묻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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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잘나가던 주철환이 현장을 떠나 이대교수로 강단에 서더니, 7년 만에 다시 경인TV(OBS)의 CEO로 변신을 거듭했다. 질주였다. 하지만 최근 경인TV CEO를 ‘타의’로 그만두면서 처음으로 ‘실패’라는 평가와 마주하게 되었다. 세간의 관심이야 온통 그 부분에 쏠려 있지만, 오늘의 직격인터뷰의 주안점은 그의 ‘변신’이 아니라 ‘인간 주철환’에 있다.

꿈꾸는 낭만주의자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한 인간을 규정하는 기호는 대개 '직함'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 ‘그’를 부를 마땅한 사회적 호칭이 없을 때 우리는 당황한다. 그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전(前) 사장, 전 피디, 전 교수라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리포터 안경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수줍은 손을 내미는 그를 향해 유일한 현직 호칭인 ‘주 박사님’이라 부르기도 조화롭지 않았다. 그에게 물었더니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Q. 선생님은 낭만주의자십니까?

그건 아니에요. 물론 때로는 그럴지도 몰라요. 낭만을 견지 할 때는 낭만주의자고 때에 따라서는 고전주의자나 현실주의자도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낭만’이 제가 좋아하는 삶의 유형이긴 해요.

Q. 처음에 중학교 국어교사에서 PD로 전업한 것도 특이한 이력인데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 모교에서 교사를 하는 것이 꿈이었죠. 한데 군대가 좀 늦었어요. 제대 전에 MBC 앞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게시판을 보고 있더라고요. 채용공고였죠.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과목이 ‘국어, 영어, 상식, 작문’인데 국어는 원래 전공이고(그는 국문학 박사다), 당시 카추샤 복무중이라 영어는 약간 자신이 있고, 자질구레한 상식도 많은 편이라고 착각하고 살았죠. 게다가 중고등학교 교내 백일장에서 두 번의 장원을 한 적이 있으니 그 과목들이 와 닿아 그냥 원서를 받아왔죠.

Q. 아무리 그렇다고 난데없이 교직을 버리고 ‘예능 PD’를 선택하나요?

당시 MBC 최병윤 PD가 후배 병사였는데 그가 신방과 출신이었죠. 그때 그에게 PD시험 한 번 보면 어떨까하고 물었더니, ‘당신은 죽어도 안 된다 합격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오기가 나서 시험을 쳤는데, 필기에서는 합격하고 최종면접에서는 당연히 떨어졌죠.

Q. 왜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합니까?

PD가 정확히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가 왜 PD를 하고 싶은지도 몰랐으니 당시 면접을 보던 이웅희 사장이 오히려 당혹스러워하더라고요. 그 후 ‘내 길이 아니다’고 생각 했는데 몇 달 뒤 추가모집으로 합격했다는 통보가 왔어요. 그 순간 재밌을 것 같아서 입사를 결심했지요.

Q. ‘재밌을 것 같아서’라면 정말 특이한 이유인데, 그 후에도 다시 교수, CEO까지 숨 가쁜 변신을 했거든요. 말씀을 듣고 보니 변신을 놀이처럼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데요?

그건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실례죠. 내가 선택하고 도전하는 곳의 공통점은 ‘재미있는 곳’이라는거죠. 나는 어릴 때 TV와 라디오를 좋아했고 가르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 변신도 교육 아니면 방송쪽이었으니, 그건 ‘변신’이라기보다는 ‘진화’라고 할 수 있죠.

Q. 마지막 진화였던 경인TV(OBS) 사장으로 갔을 때,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왜 그 제안을 받아들였나요?

PD를 하다보면 늘 ‘내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죠. 사장이 프로그램 존폐에 영향을 미치는 최종 결재자니까요. 저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뜬금없다. 황당하다’라고 생각했지만, 내 마음대로 좋은 프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나를 그쪽으로 이끌었죠.

Q. 하지만 아무리 숙원이 있어도 그렇지, 정년과 명예가 보장된 대학교수보다 미래가 불투명한 지역방송사장이 되는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을까요?

저는 지금도 후회는 정말 하지 않아요. 인생은 다양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죠. 65세까지 이대 교수로 있는 것도 좋지만 ‘우여곡절 있는 삶이 밋밋한 평화로움보다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Q. OBS에서 고통스럽지 않던가요? 재직시절 간간히 괴로운 심경을 내비쳤는데요.

오히려 그 괴로움이 나를 키웠죠. 저는 태생적으로 성공보다는 성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Q. 경인TV에서 결국 ‘토사구팽 당하고 말 것이다’는 주변의 우려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나요?

그런 생각은 못했죠. 그렇게 생각했다면 아마 가지 못했겠죠. 사냥개가 마지막 순간에 보신탕집에 끌려가면서 ‘보신탕집 주인도 측은지심이 있겠지’하고 가지는 않죠. 나는 만남의 의미를 중시해요. 그냥 ‘재미있을 것이다. 즐거울 것이다’라고 생각했죠. 몇 개의 측면에서 억울하달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도 사라졌어요.

Q. 앞서 낭만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는데, 사장을 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면 그 자체가 낭만주의적 사고가 아닌가요?

그건 솔직히 인정!

(연배가 위인 사람에게 이런 표현이 예(禮)는 아니지만, 그는 무척 천진난만한 사람이었다. 인터뷰이에게 꽤 신랄한 느낌일 수 있는 질문에도, 그는 어린아이가 장난을 걸듯 탄력적인 반응을 보였다)

Q. 그곳에서 지낸 2년은, 선생님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요?

서로 의미 있었고, 앞으로도 서로 잘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쪽에서 초기에 내 달란트가 필요했다면 그것으로 다행이고, 나로서도 일부라도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한 10년 정도에 걸쳐 제대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이죠.

Q. 프로듀서로서의 이상과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현실 같은 것을 생각하지 못했나요?

지금은 강하게 절감해요.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모으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것들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주주들이 볼 때는 ‘철없는 생각이다’고 보였겠죠. 본질적 입장차이죠. 그쪽에서 서로 헤어지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하던데, 저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 받아들여요.

(그는 직원들과 정이 너무 많이 들어 아직도 송별회 중이라고 했다. 아울러 주주들과의 이견과, 임기 중에 후임이 거론되던 난감한 전후사정 등에 대해서는 애써 말을 아꼈다. 그 전후사정이란, 그가 사장으로 재직하던 중 모 인사가 대주주인 영안모자 부회장과 후임사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더니, 그리 머지않아 그가 퇴임한 것을 가리킨다)

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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