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가 고른 딱 한장의 음반 ④ 은행원 장동기씨의 브람스 교향곡 4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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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기씨는 LP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 까닭을 물었다. “CD의 가장 큰 장점은 음악 좋아하는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 편하다는 점이죠.” [김경빈 기자]


장동기씨 집은 의외로 단출하다. 작은 책장에 차곡차곡 음반이 쌓여 있고, 그나마 몇 개의 책장엔 여닫이 문을 달아 음반을 숨겼다. 음반 수납장마저 한곳에 모아놓지 않고 이곳 저곳에 흩어놓아 수십 년 수집가의 과시욕을 찾을 수 없었다.

“다 해서 3000장 정도예요.” 20년 넘게 음반을 모았지만 항상 같은 수량을 유지했다. “음악은 나눠야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다고 느끼는 순간 방출 음반을 찾는 일이 시작돼요.” 자주 안 듣는 음반, 자신보다 친구가 더 좋아하는 음반 등을 염가로 내보낸다. “순수하게 음악이 좋아서 시작하고는 물욕으로 수집을 이어갈까 걱정이 돼서요.”

◆부산 소년의 첫사랑=장동기씨의 순수한 시작은 사람의 목소리였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들었던 파바로티다. “오페라 ‘라보엠’이었는지, ‘리골레토’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듣는 순간, ‘사람이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충격에 빠졌어요.” 따뜻하면서도 결점이 없는 그 목소리를 찾아 그는 고향 부산의 광복동 음악 다방을 드나들고, FM 라디오를 늘 켜뒀다. 결국 시대순, 작품별로 파바로티의 음반을 다 모으게 됐다. “파바로티 음반 중 최고로 꼽는 것은 198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한 베르디의 오페라 ‘에르나니’예요.” 대담하면서도 살살 녹는, 불가능해 보이는 불균형을 이룬 48세 중년의 파바로티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장씨는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와 84년 녹음한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도 ‘베스트 파바로티’로 꼽았다.

경이로운 목소리에 대한 존경으로 시작한 음반 수집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음반사(데카)와 계약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로 넘어갔다. 정경화가 녹음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다 모으고, 관심의 폭도 점차 넓혔다.

◆아빠 닮은 아이들도 클래식 팬=직업으로 얻은 경제 감각은 음반을 모으는 데 큰 힘이 됐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은행 일을 시작했어요. 취업 직후 3~4년이 평생의 자산 관리를 좌우하죠. 저는 창구업무부터 시작하면서 돈 모으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2003년 마음에 드는 오디오를 장만한 후 음악의 미세한 결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좋은 오디오가 있으니, 음반 과욕이 더 사라져요. 오히려 두 딸을 위한 책을 사줘서 꽂아놓는 편이 더 행복하던데요.” 이렇게 ‘3000장 상한선’을 유지하는 그는 중2, 초등 3학년이 된 딸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MP3에 가요 대신 베토벤을 넣고 다니는, 아빠 닮은 아이들이다.  
김호정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 장동기씨가 말하는 이 음반

브람스 교향곡 4번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도이치그라모폰 

카라얀에 이어 베를린 필 상임 지휘자를 맡았던 아바도는 종종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젊은 시절 런던·시카고 심포니, 밀라노 라스칼라 필하모닉과 이뤘던 성과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1988~91년에 녹음한 브람스 교향곡을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브람스 4번의 경우, 브루노 발터·카를 뵘·카를로스 클라이버 등 역사적인 지휘자보다 강한 인상을 준다. 터뜨릴 때 터뜨리며 브람스 특유의 캐릭터를 제대로 뽑아내기 때문이다.

■ 자녀가 좋아하는 DVD 3선(選)

- 예브게니 키신(피아노)의 다큐멘터리 ‘음악의 선물(The Gift Of Music)’: 세계적 인기와 명성 뒤편의 치열한 노력과 열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위인전’이다.

- 마이클 틸슨 토머스(지휘)의 ‘키핑 스코어(Keeping Score)’ 베토벤 영웅 교향곡 : 서양 음악사의 중요한 작품을 탐구한 다큐멘터리. 음악 해설도 일품이 다.

- 다니엘 바렌보임(지휘)의 ‘2009년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올 1월 1일 연주한 실황.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에서 연주자들이 연주 중간에 무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며 음악에 흥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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