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책사랑] 김원치 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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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몇 사람에게 책 많이 읽는 법조인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이구동성으로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김원치(61) 변호사. 서울 고검 차장, 대검 감찰부장을 거쳐 대검 형사부장(검사장)을 지내다 지난해 봄 이른바 ‘검찰 개혁 인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남기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인물이다.

서울 서초동의 김 변호사 사무실에는 역시 책이 가득했다. 그의 자리 바로 옆에는 『교양』(들녘), 『교양으로 읽어야 할 절대지식』(이다미디어),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열린책들) 등 두툼한 신간들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책의 맨 위에는 『Eyewitness to Power』(Simon & Schuster)라는 영문 원서가 놓여있었다.

그 책들의 표지 안쪽의 빈 공간 써 있는 깨알같은 글씨를 들여다보자 그는 “검사라는 직업이 독서카드를 만들면서 책을 읽을 만큼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는 않아 젊어서부터 책 앞 쪽에다 인상깊은 대목의 쪽수와 글귀를 적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열심히 읽어도 한 달에 다섯 권 이상 읽기는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책장 속의 책 대부분이 읽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책인데다 책마다 꼼꼼하게 읽은 흔적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뤄 책에 쏟는 시간은 상당한 것으로 짐작됐다.

김 변호사는 책을 사랑한 이유를 “세상에 대한 호기심, ‘파우스트적 충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생각들을 접해야 검사로서의 수사, 변호사로서의 변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그는 1980년대초 독일 막스프랑크 국제형법연구소에 연수 갔을 때 도서관에 있는 희귀본들을 일일이 복사해 가지고 돌아온 것, 고교 때 선생님 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른스트 카시러 지음, 서광사) 의 원서를 빌린 뒤 선생님의 반납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내 간직한 일 등을 추억으로 떠올렸다.

소년시절부터 수십번 읽었다는 『플루타르크 영웅전』과 전 일본 검찰총장이 쓴 『秋霜烈日』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꼽은 그는 “좋은 책을 읽어 자신이 먼저 선해져야 선의 편에 속하게 되고, 그래야만 악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을 후배 검사들에게 해주고 싶다”며 책들을 다시 가지런히 쌓았다.

글=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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