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한 낮의 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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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낮의 우울, 원제 The Noonday Demon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민음사, 2만5000원

“우리가 눈을 떠/선을 잃고 악을 얻게 됐네.” ‘실락원’에서 밀턴은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과 이브의 삶을 시적 언어로 노래한다. 지혜와 희망을 가진 그들은 곧바로 ‘인간의 조건’과 맞닥뜨려야 한다. 고독 혹은 우울이라는 몸 안의 정체모를 괴물…. 이 대목의 표현은 이렇다. “그들은 손잡고 천천히 헤매며/에덴을 나와 고독한 길을 걸었네.”

우울증에 관한 논픽션『한 낮의 우울』은 희안한 책이다. 밀턴 등 문학서는 물론 임상보고서·인터뷰를 넘나드는 종합적인 글쓰기로 깊이를 인정받았으면서도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대중적 흡인력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도 2001년 출간 직후 1년만에 영어권에서 25만부가 팔리는 상업적 성공은 흔한 게 아니다. 한국 출판에도 ‘미래의 성장엔진’으로 떠오른 논픽션의 새로운 가능성일까?

그 대목은 일단 괄호 안에 넣어두자. 분명한 것은 이 책은 일단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미국인들 2000여만명을 잠재적 수요자로 뒀다는 점이다.(한국도 성인여성의 45%가 경증 우울증에 시달린다.) 결정적인 성공요인은 의학 따로, 사회문화사적 설명 따로여서 조각이 났던 우울증을 저자 솔로몬이 근사하게 감싸안아 표현하는데 성공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 내면의 공포와 멜랑콜리의 근원을 과학적이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들려준다. 하긴 저자 자신이 우울증 환자라서 개인적 증언도 들려준다. 가계의 내림인지 그의 어머니 역시 세코날을 병째 삼키고 자살을 했다. 이 우울증에 관한 비교문화적인 측면, 우울증이 집단 정서에 끼치는 정치의 영향과 실례를 충실히 검토하고, 시대마다 천재의 증후와 신의 저주라는 대접을 번갈아 받았던 우울증의 역사를 훑는다.

또한 우울증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강한 의지를 발휘한 사람들의 이야기, 작지만 강한 생명력이 사회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듣다보면, 예사롭지 않은 읽을거리임에 틀림없다. 바탕에 깔려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것을 담담하게 펼쳐가는 일급의 읽을거리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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