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스트레스 테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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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러나 스트레스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스트레스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인체의 긴장 상태를 말한다. 자극 호르몬인 아드레날린 등이 혈액에 분비돼 외부의 위험에 대처해 싸우거나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보통은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만 적당하면 오히려 신체와 정신에 활력을 주는 것이 스트레스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하거나 장기간 반복적으로 쌓일 때다. 파산한 기업인이나 실직한 가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는 파산과 실직이 주는 스트레스 강도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웬만한 스트레스에는 끄떡하지 않거나 오히려 스트레스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뉴스위크 한국판 최근호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조절해 즐기라고 권한다. 스트레스의 나쁜 면만 보지 말고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자는 얘기다. 스트레스에 굴복하지 말고 오히려 분발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힘이 복원력이다. 뉴스위크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복원력이 있으며 훈련을 통해 복원력을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미 육군의 생존훈련 학교인 캠프 매콜이다. 이곳 입소자는 이른바 ‘스트레스 면역 훈련’을 받는다. 예방접종으로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것처럼 낮은 수준의 스트레스에 적응시켜 더 큰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을 받은 정예 특전대원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집중력과 판단력을 유지해 생존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복원력이 검증됐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선 특이한 스트레스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사람이 아니라 금융회사들의 생존 능력을 알아보는 시험이다. 미국 정부는 대형 은행 20곳에 대해 경제위기가 악화된 상황에서 견딜 수 있을지를 평가하고 있다.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경우를 가정해 은행들이 자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보는 것이다. 성장률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인 마이너스 3.3%로 떨어지고, 주택가격이 22% 더 하락하며 실업률이 8.9%로 급증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있다. 이미 최대 은행인 씨티그룹이 테스트를 제대로 받아보기도 전에 나가떨어졌다. 여기서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은 자본의 건전성이다. 늘어나는 부실 채권을 감당할 만한 자기자본을 갖고 있느냐가 판정 기준이다.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은행에 대해선 우선 민간자본을 유치해 자본을 확충토록 하고 그것도 실패하면 공적 자금이 투입된다. 당연히 기존 주주의 권리는 박탈되거나 제한되고 경영에 정부가 개입하게 된다.

지금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는 미국 은행들은 한가롭게 스트레스를 즐길 입장도 아니고 훈련을 통해 면역력을 키울 시간도 없다. 이미 위기는 벌어졌고,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 생사를 가르는 살생부의 판정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다.

이 스트레스 테스트는 조만간 우리나라 금융회사와 기업, 개인들에게도 닥칠 것이다. 각자 누가 살고 누가 쓰러질 것인지를 가르는 시험지를 받아 들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