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론]평생직장서 평생직업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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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서양인들은 자기신분을 나타낼 때 자기 '직업' 을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직업대신 자기 '직장' 을 말한다.

질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직업대신 직장을 먼저 묻는다.

우리가 직업대신 직장을 먼저 앞세우는데는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여기고, 기업을 하나의 생활공동체나 기족공동체로 여기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지속된 고도성장의 경제흐름 속에서 구성원들은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의 인사관행의 틀로 인해 고용불안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기업의 사정도 아주 달라졌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중을 줄이고 정예화를 추구하는 인력리엔지니어링이 절실히 요청되었고, 이에따라 명예퇴직, 조기퇴직 등의 고용불안을 야기시키는 제반의 조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인생중반의 구성원들이 직장에서 쫓겨난 소위 '고개 숙인 남자' 로 삶의 쓴맛을 보게 되었다.

금년 들어 4월까지 매월 13만명씩 모두 52만명이 해고.명예퇴직 등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사실 그 동안 우리의 중간경력자들은 자기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보고 조직에의 소속과 충성을 중시하였으며, 개인의 직업적 경력과 능력개발은 경시해왔다.

그 결과 직무에 대한 새로운 지식과 기능을 계속 함양치 못하였고 기술과 능력이 진부화되어 첫 번째 해고의 대상으로 지목되기 시작하였다.

우리사회도 평생직장시대에서 평생직업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직장이 평생직장이 되기 위해서는 직장이 요구하는 전문적 능력과 직업성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직장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전문성을 개발시켜주는 진로선택, 즉 직업의 선택이 더 중요하다.

기업의 종신고용의 의미도 종신고용을 가능케 하는 능력개발의 기회부여로 바뀌고 있다.

종신고용이란 종신고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시켜주는 기회의 제공으로 해석된다.

고용불안의 해소를 경기호전이나 가족적 종신고용에 기대해서는 안된다.

전문성과 직업성이 없으면 언제든지 쫓겨나는 시대로 변했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경력관리를 철저히 할 때가 왔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단순히 명성만 높다고 해서 선택할 것이 아니라 자기 직업성을 살릴 수 있는 곳을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선택된 직장 내에서도 자기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직무와 진로를 항상 모색하여야 한다.

조직내의 파워도 과장.부장등의 계층적 계급권한에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자격에 의한 전문적 기능권한에서 발생되는 시대로 변했다.

그러기 때문에 전문직이 우대를 받고 이들이 장기고용과 승진에 우선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우리 기업도 철저한 전문적 경력관리를 통해서 기업의 기술축적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때가 왔다.

기업경쟁력의 원동력인 기술은 기계시설에 따라다니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다니는 소프트웨어 내지 휴먼웨어이다.

인간에게 체화된 능력이 바로 기술인 바 손끝의 기능기술, 머리속의 지식기술, 마음속의 태도기술을 살릴 수 있는 체계적인 경력관리 체제 없이는 기업의 혁신과 경쟁력은 기대할 수 없다.

인생의 초기.중기.후기의 직업적 경력관리를 경쟁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조직과 구성원이 함께 철저히 관리할 때가 왔다.

최종태 <서울大경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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