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女 테레사 잃은 인도…밤샘 추모 발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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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캘커타의 중심가 브뤼셀 스트리트에 위치한 세인트 토머스 성당. 가난한 이들의 영원한 어머니 테레사 수녀는 7일 그곳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수많은 애도 인파를 수용할 수 없었던 사랑의 선교회가 테레사 수녀의 시신을 비교적 넓은 공간을 갖춘 세인트 토머스 성당으로 옮겨 이날 오전 9시 (한국 시간 낮 12시30분) 부터 일반 시민들의 조문을 맞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 모든 이들과 함께 한 고통으로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가지런히 포개 가슴에 얹긴 했지만 나환자들의 상처를 닦아주던 고귀한 두손엔 세파의 상흔이 그대로 아로새겨지기라도 한듯 가냘픈 몸에 비해 유난히 커 보였다.

지난 51년동안 캘커타 곳곳은 물론 세계 각지를 누비며 말없는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실현해오던 두 발은 역시 생전과 마찬가지로 맨발이었다.

그리고 이젠 사랑의 선교회 고유복장이 돼버린 무명 사리에 푸른 천도 역시 생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요히 눈을 감은 테레사 수녀를 감싸고 있었다.

"어머니는 우리 모두를 고아로 만들고 떠나셨습니다. "

캘커타에서 야채상을 하는 아리 (25) 는 이날 붉은 장미를 들고 이른 아침부터 토머스 성당으로 향하는 브뤼셀 스트리트로 나섰지만 5백m 가까운 이 거리는 전날 밤부터 줄을 선 시민들로 만원이었다.

경찰과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의 질서잡기로 그는 브뤼셀 스트리트에서 밀려나 인접한 파크 로드에 도착해서야 겨우 줄의 끄트머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성당에 안치된 테레사 수녀 앞에 서게 된 것은 그로부터 3시간후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 불평이 없었다.

단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의 커다란 두 눈에선 금세 눈물이라도 쏟아질듯 한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가 태어난지 10일 됐을 때 테레사 수녀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고 해요. " 캘커타를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이드겸 운전사로 일하는 수브라다 라이 (34) 는 연신 앞이마를 어루만지며 울먹였다.

지난 1690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개발로 탄생, 3백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인구 1천여만명의 대도시 캘커타는 한 작은 수녀의 서거로 도시 전체가 생기를 잃은 표정이었다.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던 환락의 거리들 또한 빛을 잃고 말았다.

캘커타 시민들은 모두 만나기만 하면 테레사 수녀에 대한 추억 한두가지씩을 떠올리며 침울한 표정들이었다.

사랑의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의 아동들이 수녀의 서거를 알아채고선 힘을 잃고 있는 것이다.

"그저 아무 힘이 없어요. " 평소같으면 조금이라도 더 먹으려고 기를 쓰던 자르나 다스 (10) 는 이날 점심에 손도 안됐다.

"나는 자유롭고자 하나 신은 자신만의 계획을 갖고 있다."

이는 지난 90년 테레사 수녀가 사랑의 선교회 대표직서 물러나려다가 수녀들의 만류에 부닥쳤을 때 토해낸 말이다.

이제 수녀는 지난 5일로 영면,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시신이 안치된 토머스 성당 바로 뒤켠엔 이름모를 질병으로 피부가 벗겨진 여인이 조문객들을 상대로 적선의 손길을 뻗고 있는가 하면 교차로에 정차하는 승용차를 상대로 잘려진 팔을 흔들며 한푼 동정을 구하는 초로의 남자들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 대한 봉사는 아직도 끝이 나지 않은 것이다.

수녀의 육신은 이제 세상을 떠나 자유로워졌지만 그 영혼은 이들 가난하고 병든 자들로 인해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커타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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