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잃어서 … 일자리 찾아서 … 불황 속 21세기‘노마드’급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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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로 지구촌 사람들의 대이동이 시작됐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외국에서 고국으로 또는 그 반대로 움직이는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게는 수만 명에서 많게는 수천만 명이 거대한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만들어낸 새 풍속도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객지 생활을 정리하고 귀향하거나 일자리를 찾아 조국을 떠나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지구촌 곳곳을 떠도는 21세기 ‘노마드’(nomad·유목민) 가운데 일부는 밀입국까지 감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새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도시에서 농촌으로=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직장을 잃고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가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캄보디아·라오스·태국 등 동남아 국가에선 수백만 명의 시골 출신 노동자가 도시 지역에서 의류·고무 등의 수출품 생산 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이 지역에선 경제위기가 막 시작됐기 때문에 이들의 귀향 움직임은 이제 시작이라는 게 IHT의 전망이다. 앞으로 방콕의 식당과 자카르타의 호텔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귀향 행렬에 합류할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중국에서는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1억3000만 농민공 가운데 실직해 귀향한 숫자가 2000만 명에 달한다고 중국 국무원이 최근 발표했다.

◆외국에서 고국으로=모래사막 위에 ‘지상 낙원’을 건설하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도 외국 근로자들이 빠져나가 ‘유령의 땅’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네덜란드 세계 라디오(RNW)는 지난달 27일 웹사이트를 통해 “두바이에 있는 수만 명의 노동자가 최근 해고돼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이라고 전했다. 현재 두바이 인구의 85%가량은 외국인이다. 거리에서는 짐을 싸 고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흔히 목격된다. 두바이에 사는 데밍크는 “갑자기 빈집이 늘었다. 지금 거리는 과거보다 훨씬 조용해졌고 차도 드물다”고 밝혔다. 고급 인력까지 두바이를 빠져나가자 당국은 이들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자법을 고쳐 기업 간부와 숙련공들은 일정 기간 직장이 없더라도 체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조만간 시행될 예정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일하던 인도 근로자들도 고국행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2만여 명의 인도 사람이 귀국했다고 인도 경제신문 비즈니스 스탠더드가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일자리 찾아 외국으로=지난해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친 뒤 가장 먼저 국가부도 사태로 내몰린 아이슬란드에서는 젊은이들이 조국을 떠나는 엑소더스를 연출하고 있다고 IHT가 보도했다. IHT는 아이슬란드 신문 모르군블라디드를 인용해 “18~24세의 청년 중 절반가량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먹고살기 위해 밀입국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홍콩이나 마카오는 대륙에서 비자 없이 불법적으로 건너온 중국 농민공들로 골치를 앓고 있다. 홍콩 언론들은 최근 “금융위기 이후 중국인들의 불법적인 홍콩행이 급격히 늘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한 해 동안 불법적으로 홍콩행을 시도했다가 적발돼 대륙으로 되돌아간 중국인 숫자는 약 2만7000명이었으나 올 1월에만 5000명에 육박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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