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프라이드] ③ 김·인·식 … 그가 ‘국민 감독’인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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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한화 김인식 감독도 처음에는 제2회 WBC 한국 대표팀 감독직을 사양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일군 김경문(두산),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김성근(SK) 감독이 모두 고사하자 떠밀 듯 넘겨진 자리였다. 김인식 감독은 그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감독감이 없어서 나같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대표팀 감독으로 내보냈나’라고 할 것 아닌가.” 자신보다 국가의 체면을 먼저 생각하는, 김 감독다운 말이었다.

2004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 그는 아직도 거동이 불편하다. 더욱이 올해는 한화와의 계약 마지막 해라 소속팀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다. 하지만 김 감독은 결국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였다. “국가가 없으면 야구도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의 주변엔 늘 사람들이 많다. 요즘에야 맥주 두세 잔이 고작이지만 소싯적엔 김 감독도 소문난 애주가였다. 그 역시 사람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김 감독은 치아 때문에 애를 먹다 결국 틀니를 했다. “매일 술 먹고 나서 양치를 안 하고 잤기 때문”이란다.

과묵하고 근엄한 인상이지만 위트도 넘친다. 제1회 WBC 때 이치로(일본)가 한국에 진 뒤 “한국을 이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자 김 감독은 “자기가 무슨 하일성(당시 KBS 야구해설위원)이야? 꼭 야구 끝난 다음에 얘기를 하네”라고 받아쳐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처럼 툭툭 던지는 유머가 예사롭지 않지만 그에게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무엇보다 의리와 배려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첫 프로 감독을 맡은 쌍방울 시절에는 그도 40대의 다혈질이었다. 구단 고위층과 자주 충돌했고, 결국 3년 만에 옷을 벗었다. 그때 함께 실업자가 된 코치 한 명이 아들로부터 “난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나 하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되는데…”라며 무척 미안해했다.

95년 OB의 한국시리즈 우승 축하연에서는 MVP도 에이스도 아닌 백업포수 한 명을 가리키며 “정말 수고했어”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이렇듯 그는 주변 사람들을 세심하게 배려한다. 그래서 스승의 날이면 선수들은 소속팀을 가리지 않고 김 감독에게 감사의 선물을 전한다. “감독님과 끝까지 같이 있고 싶다”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그런 김 감독이 요즘 고민이 많아 보인다. WBC 코칭스태프와 선수 선발 과정에서 워낙 마음고생을 한 데다 팀 전력도 1회 대회 때만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버려도 좋을 것 같다. 감독직을 수락한 것만으로도 김 감독은 충분히 제 할 일을 다 했다. WBC는 그의 실력을 또 한번 발휘할 수 있는 ‘보너스 게임’일 뿐이다. 성적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변함없이 그를 ‘국민 감독’이자 ‘의리의 사나이’로 기억할 것이다.

신화섭 기자<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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