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살아있다] 고향길 좋은 책 한권씩 들고 갔으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올해도 어김없이 독서의 계절이 다가왔다.

그러나 독서의 계절만 되면 출판인들은 더욱 우울해진다.

떨어지는 낙엽 탓에 우수에 젖어드는 것이 아니라 독서의 계절이란 표어가 무색하게 출판사들 주머니가 더욱 얄팍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나마 출판경기가 괜찮은 시기는 일년에 두번씩 있는 신학기와 방학 때이고, 정작 책을 보기 가장 좋은 가을에는 1년중 매출이 가장 낮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딱 한번 있었다.

지난 91년 가을에는 모두 밀리언셀러가 된 '소설 동의보감' 과 '배꼽' 으로 인하여 일부 단행본 도매상들이 그해 최고의 매출을 이루었다, 단순히 두 책의 매출로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강력한 리드상품으로 인하여 시장 자체가 활성화됐던 것이다.

따라서 가을에 들어선 우리 출판계는 출판상업주의라는 일부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불황을 탓하기보다 독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만큼 이제 출판인에게도 글을 해석하는 능력 이상으로 독자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한편 뉴미디어로 인하여 책의 종말을 운운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정부마저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책의 종말이라는 공포 속으로 출판인을 몰아넣고 있다.

문체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21세기 한국 출판산업의 전망과 진흥방향' 에서 미국 미디어전문가 맥루한의 관점을 근거로 "산업사회가 종이에 기반을 둔 사회라면 앞으로의 정보사회는 전자매체에 기반을 둔 사회" 라는 전망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이 뉴미디어를 우리보다 빨리 그리고 깊이 경험했던 주요 출판선진국들은 컴퓨터혁명에 따른 책의 종말이라는 공포에서 벗어나 새로운 책의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주요국 가운데 한국만 빼고는 모든 나라에서 출판량이 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도서관과 같은 기본 인프라가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오로지 독자들의 손길만을 기대해야 하는 출판인들의 안타까운 바람은 독자들이 이 가을 귀향길에 좋은 책을 한 권씩 들고 갔으면 하는 것이다.

한기호,창작과비평사 영업기획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