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서초·수서경찰서 직원 최대 600명 물갈이 까닭은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휴일인 1일, 서울의 강남·서초·수서경찰서에 비상이 걸렸다. 인사를 담당하는 경무계는 전 직원이 출근해 수백 명에 달하는 관내 경찰관의 신상 데이터를 뽑고 있었다. 서울경찰청이 지난달 27일 “강남·서초·수서서에서 8년 이상 근무한 경위급 이하 직원들을 다른 경찰서로 보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저녁엔 경찰서마다 인사위원회가 열려 전출 대상자를 가려냈다. 반면 강북 지역에 있는 경찰서에선 이날 강남 지역의 3개 경찰서로 옮길 희망자를 접수했다. 강남서의 한 경찰관은 “강북에 있는 동료가 전화를 걸어와 ‘이번에 전보를 신청했는데 어느 보직이 괜찮냐’고 물어오더라”고 전했다. 강남-강북 경찰서 간 ‘맞트레이드’는 2일 윤곽이 드러나고 이번 주 중 인사 발령이 날 예정이다.

강남 지역 전보 대상자는 경찰서당 150~200명 선으로 최대 6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형사과·교통사고조사계·생활안전계·여성청소년계·지구대 등 ‘민원 부서’가 대상이다. 하지만 과거 이 부서에서 근무했던 직원까지 포함돼 사실상 모든 경찰관이 대상이다. 이철규 서울청 경무부장은 “정기적인 인사 조치일 뿐이다. 1999년과 2003년에도 대규모 전보 인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경찰청 관계자는 “대규모 전보는 강남 지역 경찰관과 유흥업소의 고질적인 유착 비리를 뿌리 뽑으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강남권 경찰서는 업무량이 많아 인사고과와 승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 또 대기업과 대형 서비스 업소가 밀집해 경찰관들 사이에선 ‘물 좋은 곳’으로 손꼽혔다. 이 때문에 경찰관이 연루된 비리도 끊이지 않았다. 2003년엔 강남서 경찰관이 납치강도 사건에 연루돼 경찰관 151명이 전보 조치됐었다. 2006년에는 법조 브로커 사건으로 강남 지역 일부 경찰관이 사법 처리됐다.

대규모 전보 인사에 따라 업무 공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수서서의 한 경찰관은 “8년 이상 근무한 인력들은 지역 정보를 꿰고 있다”며 “이들을 모두 전출시키면 강력 사건이 났을 때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보 대상자들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강남서의 한 경찰관은 “도매금으로 죄인 취급당하고 있다. 전보가 아니라 귀양 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초서의 전보 대상 경찰관도 “우리 경찰서는 지난해 경찰이 연루된 비리 사건이 한 건도 없었는데 강남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꼴을 당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