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소비쿠폰제 ‘돈 샐 틈’ 없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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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규모 추경예산 편성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소비쿠폰 발행 문제다. 최근 미디어법 상정을 둘러싸고 야당이 국회 보이콧을 선언함에 따라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고는 있지만 적어도 추경-그것도 상당 규모의-편성 자체에는 이견이 없기 때문에 조만간 도입 여부와 도입 시 지급 범위, 지원 액수, 사용 대상 등 구체적 문제를 놓고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설을 코앞에 둔 1월 18일 대만에선 1인당 3600대만달러(약 14만5000원)의 소비권이 배포됐다. 당일 받아간 사람만 90%를 넘을 정도로 기대를 모은 소비권은 설 특수와 맞물려 실제 소비로 빨리 연결됐고, 당초 GDP 0.64%의 성장률 신장 효과를 기대했던 대만 정부는 이를 1%로 상향 수정했다.

<닛케이 비즈니스 2월 23일자>

하지만 다른 사례도 있다. 10년 전 일본 정부는 침체에서 벗어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던 경제의 회복 속도를 가속화하기 위해 2만 엔의 상품권을 나누어준 적이 있다. 하지만 불황을 체감한 일본 국민들 중 많은 사람이 이른바 ‘카드깡’의 방식으로 현금화해 외려 저축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정책효과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정책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것이지만 사실 소비쿠폰제는 여러 나라에서 쓰여진 방법이다. 지난해 물가를 감안한 실질소득과 실질소비가 모두 전년 대비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올해는 명목소득이나 소비 자체가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저소득층 지원과 내수 진작에 다소라도 도움을 주자는 의미에서 소비쿠폰제가 거론되는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선 대상을 어디까지로 할 것이냐는 문제다. 앞서 예로 든 일본과 대만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삼을 경우 배분은 오히려 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재원의 한계나 지원 명분 등을 생각할 때 대상은 일정 소득 이하의 계층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그 기준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와 함께, 과연 대상 선별이 적절하게 이뤄졌고 누수 없이 분배되었느냐를 어떻게 검증하느냐는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상황이 긴급한 만큼 다소의 누수야 감수한다 치더라도 요즘 몇몇 지자체에서 벌어진 복지예산 횡령 사례를 보면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한마디로 복지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얘기다. 복지예산 증액의 당위성만 그토록 강조했지 그 전달체계를 정비하는 데는 소홀했던 후유증이 바로 이런 거다. 행정조직에만 맡길 수 없다면 선발과 배분 과정에서 지역 사정에 밝은 시민단체·종교단체 등의 적극적 참여와 감시를 체계화하는 방안을 빨리 찾을 필요가 있다.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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