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원로 여류작가 베아트릭스 최근작 '어디로 더 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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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의 길목에서 많은 프랑스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소설이 있다.

프랑스 여류원로작가 베아트릭스 벡 (87) 의 최근작 '어디로 더 멀리 (Plus loin mais ou)' .소외되고 고립된 노인의 문제를 다룬 이 색다른 소설을 통해 여름휴가에서 갓 돌아온 프랑스인들은 깊은 사색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인 마르셀린은 갈곳도 만날 사람도 찾아오는 이도 없는 외로운 노인.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자신을 지탱할 힘조차 없고 주변과의 단절로 시계의 태엽이 풀린지 오랜 그녀의 삶은 마치 죽은 사람과도 같다.

그러나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것은 영양가 없는 죽과 가난이 아니라 고독과 소외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날 기적과 같은 만남이 다가온다.

인근 숲에 땔거리를 주으러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20대 청년 로젠골드. 2차대전 중 유태인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청년과 할머니 사이에는 고독이 맺어준 공감대와 함게 끈끈한 우정이 생겨난다.

삶에 꿈이 살아나고 인간의 체온을 되찾은 그녀는 평화롭게 죽음을 준비해 간다.

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작은 만남이 주는 무한한 힘에 읽는 사람들의 콧등은 시큰해진다.

"문학은 오랫동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 관심을 쏟아부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소외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에 주목할 때" 라고 작가는 강조한다.

대표적 소외계층인 노인 인구가 날로 늘어가는 만큼 본격 노인문학시대를 예고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프랑스 문학의 전통적인 사안인 인간실존에 대해 새로운 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화제가 되고있다.

개인 속에서 존재의 해법을 찾아온 기존 프랑스 작가들과 달리 인간의 행복과 타자와의 관계의 절대성을 시사함으로써 문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베아트릭스 벡은 지난 52년 소설 '레옹 모랭 신부님' 으로 프랑스 최대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으며 '타인과 자신' . '비정상적인 죽음' 등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에 주된 관심을 보여왔다.

또한 뒤라스.유르스나르.보브아르와 함께 금세기 프랑스 여류문학을 이끌어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최성애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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