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나들이] 세발낙지와 냉면이 만났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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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말국수를 고춧가루로 빨갛게 비빈 함흥냉면은 머리 밑이 가렵도록 맵다. 매운 맛을 달랜다고 곁들여 나오는 뜨거운 육수까지 마시면 입안이 화끈거리다 못해 아려온다. 젓가락질을 할수록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래서 한여름에 오히려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위해 많이들 찾는다.

함흥냉면에는 웃기로 홍어회가 오른다. 홍어회를 잘게 썰어 매콤.새콤.달콤하게 무쳐낸 것이다. 치아로 쉽게 끊어지지 않는 사리와 함께 홍어의 물렁뼈를 오도독 씹는 재미가 매력적이다.

전남 목포시 목포세무서 뒤편에 있는 '곰집갈비(061-244-1567)'에는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는 세발낙지 회냉면(1만원)이란 메뉴가 있다. 목포의 명물인 세발낙지를 함경도 전통음식인 회냉면에 접목한 것.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홍어회 대신 세발낙지를 함흥냉면의 웃기로 올렸는데 홍어회처럼 죽은 것을 양념해 무친 것이 아니라 살아서 꿈틀거리는 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사리 위에 올려낸다.

종업원이 주방에서 바로 받아온 냉면 그릇의 꼴이 엉망이다. 그릇 바깥까지 뻘건 양념이 지저분하게 묻어 있다. 자세히 보니 그릇에서 탈출하려는 낙지가 긴 팔(다리)로 그릇 안팎을 뻘건 양념으로 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종업원이 집게로 낙지를 꺼내 꿈틀거리는 것을 자르지만 낙지는 아랑곳없이 그릇 양념 속을 여전히 헤집고 다닌다. 산낙지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꿀꺽"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젓가락이 가면 냉면 그릇에 달라붙는 다리를 간신히 떼어 사리와 함께 입에 넣는다. 낙지가 이번엔 손님을 상대로 심통을 부린다. 입 밖으로 삐지고 나와 입 언저리를 벌겋게 만들어 놓는 것. 앞 사람이 볼까봐 얼른 휴지를 뽑아 입 주변을 닦지만 다음 젓가락에서 같은 꼴을 되풀이한다.

그래도 입안에서 착착 달라붙는 산낙지와 쫄깃한 녹말국수를 씹는 일이 재미있기만 하다.

"아줌마, 낙지 한 마리 더 주세요." 아무래도 한 마리 가지고는 성에 안차는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낙지 추가를 외쳐댄다.

반 그릇 정도 비우고 나니 눈앞에 겨자와 식초, 그리고 무절임과 배추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꿈틀거리는 세발낙지에 정신이 팔려 겨자와 식초를 더하는 것, 반찬 먹는 것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낙지 한 마리를 추가해 냉면 한 올까지 싹 비우고 나니 코끝에 땀방울이 맺힌다.

길거리 포장마차를 시작으로 30여 년간 분식집.고깃집.냉면집을 해온 주인이 올해 개발해 처음 선보인 메뉴라는데 곧 전국 각지에 '복사판'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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