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 할머니 자매 55년만에 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남이 (南伊) 언니 맞지. 맞아! 남이 언니가 틀림없어…. " 29일 오전8시10분쯤 인천 중앙길병원 여성클리닉 9층 VIP병실. 입원중인 '훈' 할머니를 찾아온 이순이 (李順伊.61) 씨는 "혈육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다" 며 훈할머니를 부둥켜 안았다.

건강악화로 지난 27일부터 이곳에서 입원치료중인 훈할머니도 어릴적 李씨의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나는 듯 "내 동생이 맞다.

이제는 떨어지지 말자" 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이들 자매는 서로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만나는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와락 끌어안고 한동안 눈물바다를 이뤘다.

이날 오후2시쯤 유전자 감식결과 李씨가 친동생으로 밝혀지자 훈할머니는 박수를 치며 동생의 두손을 꼭 잡고 뺨을 비벼대는등 감격에 겨워 어쩔줄 몰라했다.

훈할머니는 "이제 동생을 만났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평생 소원을 풀어준 대한민국 국민에게 다시한번 감사한다" 며 눈물을 연방 훔쳐댔다.

걸음마 (2살) 를 배울 때 언니와 헤어진 李씨도 "죽은 줄만 알았던 언니를 이렇게 만나다니 꿈만 같다" 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李씨는 "언니에 관한 기억은 별로 없지만 엄지발가락이 오른쪽으로 굽고 가슴이 큰 것등이 어머니를 꼭 빼닮았다" 며 고향 마산에서 언니와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8시쯤 이 병실에는 이순이씨가 아들 朴영화 (38) 씨와 올케언니 조선애 (曺善愛.63) 씨등 3명과 함께 도착. 李씨는 훈할머니를 끌어안고 얼굴.가슴등을 만지며 울음을 터뜨렸고 李씨의 올케 曺씨도 "우리 시어머니와 너무도 닮았다" 며 함께 울기 시작, 30여분동안 병실안은 울음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李씨에 따르면 훈할머니는 진동에서 엿공장을 한 아버지 李성호 (57년 사망) 씨와 어머니 張점이 (72년 사망) 씨와의 1남3녀중 둘째딸 (남이) 이며 "지난 42년 일본으로 끌려가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 는 말을 아버지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李씨는 그동안 훈할머니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공무원' 이라고 했던 사실에 대해 "마을사람들이 아버지를 '공문' 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며 "한국말을 잊은 언니가 아버지 이름을 '공무원' 이라고 발음했을 것" 이라고 설명. …유전자 감식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중에도 훈할머니는 "정말 내 동생 같다.

남동생 사진을 보니 아버지의 얼굴과 같다.

여동생과 나는 어머니를 닮았지만 남동생은 아버지를 닮았다" 고 감격. 아버지.어머니.동생과 언니들의 생존여부를 물은 훈할머니는 "이미 모두 돌아가셨다" 는 李씨의 대답에 "너마저 세상을 떴으면 가족은 하나도 없을 뻔했다" 며 李씨에게 입맞춤을 하며 끌어안기도. 한편 불투명했던 훈할머니의 혈육찾기가 뜻을 이룬 것은 최근 "아버지가 엿공장을 했다" 는 것을 기억해 내 고향인 진동리에 알린데서 비롯됐다.

인천 = 정영진.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