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편의 시조] 아지랑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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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봄은 다사로운 볕으로 이마를 어루만지며 옵니다. 봄은 아롱아롱 아지랑이처럼 어질어질한 사랑을 닮았습니다. 봄 소식은 노오란 텃밭 위 팔랑팔랑대는 나비가 먼저 알려줍니다. 나비 날갯짓이 아지랑이처럼 눈을 간질이는 작품입니다.

시조시인들이 현대시조의 참맛을 알려주는 한 수를 추천하는 ‘이 한 편의 시조’. 이달엔 한분순(66)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에게 달려갔습니다. 시조단 대표 여성 작가인 한분순 시인은 역시 여류 작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정운 이영도(1916~76) 시인의 ‘아지랑이’를 내어놓았습니다.

이호우(1912~70) 시인의 동생이기도 한 이영도 시인은 맑고 격조 높은 작품 세계를 통해 시조 고유의 서정과 운율을 아름답게 표현했습니다. 단아하면서도 감각적인 시어, 서늘한 시대 정신을 담은 시적 발언, 절절하고도 뭉클한 감성을 고루 지니며 다채롭고 깊이 있는 미학을 선보인 시인입니다.

특히 ‘아지랑이’는 1966년 발표 당시 새로운 형식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3장 6구 45자 내외의 시조 틀은 지키되 행과 연을 자유롭게 나눠 이마에 닿은 봄볕부터 아지랑이를 타고 날아다니는 나비에 이르기까지,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시선이 흘러갑니다. 특히 ‘나비’를 훨훨 나는 모양으로 배열한 마지막 부분은 지금 보아도 참신합니다. 그러고 보니, 곧 나비 날아들 봄입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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