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달래·원추리·머위 … 화물차에 실려온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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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이쪽으로 대야지. 이쪽으로!”

오후 9시 서울 가락동 가락시장. 전라남도 해남에서 올라온 1t 트럭 6대가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트럭엔 갓 수확한 세발나물이 한가득이었다. 이 시간이면 시장엔 봄나물을 싣고 전국에서 올라온 트럭으로 빈틈이 없다. 이른 봄나물을 사려고 추운 지방에서 온 빈 트럭들도 분주하게 오간다.

요즘엔 비닐하우스 재배로 나물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지만 봄나물은 지금이 제철이다. 서울시농수산물공사 유통정보팀 이한미 대리는 “진짜 봄이 되면 오히려 봄나물이 질겨지고 억세지는 탓에 요새 나오는 봄나물의 어린순이 제일 맛있다”고 설명했다. 요즘 봄나물은 향이 진한 것도 특징이다. 달래처럼 뿌리를 먹는 봄나물의 경우 통통하게 살이 올라 씹는 맛이 좋다. 냉이도 뿌리가 굵고 튼실해져 국을 끓이면 그 진한 맛이 제대로 난다.

“그쪽으로 퍼뜩 안 싣고 뭐하노.”

시장에선 유달리 억센 경상도 사투리가 많이 들린다. 이 즈음이면 경상도 사람들은 원추리·머위잎·취나물 등 봄나물 5~6가지를 섞어 먹는 ‘막나물’을 많이 먹는단다. 그래서 요즘 가락시장엔 자기 지역에서 나지 않는 봄나물을 사러 온 경상도 상인들이 넘친다고 했다. 말소리가 작다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전국의 봄나물이 가락시장으로 모두 모이다 보니 지역 상인들이 산지마다 돌아다니며 나물을 확보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락시장을 찾으면 된다는 것. 유임상 농산팀장은 “지방 도매상들이 물건을 떼러 가락시장에 많이 오다 보니 이들을 위해 제 2주차장을 따로 마련했을 정도”라고 했다.

오후 늦게나 시장으로 들어온 봄나물들은, 들어올 때는 저걸 언제 다 파나 싶지만 자정 무렵이면 시장이 거의 텅 빌 정도로 어딘가로 모두 다시 실려나간다. 봄나물은 신선함이 생명이라 이를 실어 나르는 상인들도 분주하게 밤을 지새며 다시 식탁으로 나르고 있는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 봄나물을 트럭에서 트럭으로 옮기는 동안 상인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이 시간에도 트럭의 전조등 불빛으로 시장은 한낮처럼 환하다. 달래·원추리·머위·쑥·두릅·냉이·돌나물 등 봄나물에서 나는 풋풋한 봄 향이 시장에 가득하다. 자정이 넘으면 이날 팔리지 못한 나물들은 인천 깡시장 등지에서 온 상인들이 덤핑으로 가져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새벽이 되면 소매상인들이 가게 문을 연다. 가게 앞에 가득 진열된 봄나물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데 일등 공신이 된다. 날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가락시장에는 봄이 찾아온 지 오래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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