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백인부족의 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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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90년 2월2일은 흑백을 막론하고 모든 남아프리카인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의회에서 집권 국민당이 40여년간 실시해온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포기를 선언했다.

2년 뒤에는 흑인 참정권과 차후 정치일정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이 (백인만의) 국민투표로 확정됐고 다시 2년 뒤엔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최초의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돼 부통령이 된 데 클레르크와 함께 흑백 연합정부를 이끌기 시작했다.

남아프리카 인구의 약 10%가 백인이고, 그중 40%는 영어를 쓴다.

나머지 60%가 아프리칸어 (Afrikaans) 를 쓰는 아프리카너인데, 이들이 인종차별로 악명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주체였다.

이 아프리카너는 백인이면서 원주민도 아니고, 외래인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는 점이 아파르트헤이트 비극성의 배경이 됐다.

17세기 중엽부터 남아프리카의 백인 이주는 네덜란드인이 중심이 됐다.

이들은 네덜란드어에 유럽의 여러 언어와 남아프리카 토착어까지 가미된 아프리칸어를 만들어 쓰며 유럽과는 상당히 다른 고유문화를 빚어냈다.

19세기 들어 이 지역의 통치권을 획득한 영국인이 진출하자 아프리카너들은 스스로를 침략의 대상이 된 토착민이라고 인식했다.

보어전쟁 (1899~1902) 의 참혹한 패전은 '아프리카의 백인부족' 으로서 아프리카너의 민족의식을 굳혀주었다.

'보어' 란 아프리칸어로 '농부' 의 뜻으로 아프리카너를 가리킨다.

1948년 국민당을 통한 아프리카너의 집권은 그들에게 민족주의의 승리였다.

그러나 영국에 대한 그들의 민족주의투쟁 배후엔 토착 흑인의 민족주의라는 엄청난 지뢰가 묻혀 있었다.

앞뒤가 막혀 있는 위치를 지켜내기 위해 아파르트헤이트처럼 폐쇄적인 체제가 그들에게는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이 폐쇄적인 체제를 더 이상 계속해 나갈 수 없는 한계점에서 데 클레르크의 백기 (白旗) 는 부득이한 선택이기도 했지만 과거의 비극 청산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길이기도 했다.

아프리카너는 남아프리카의 소수민족으로, 국민당은 소수정당으로 제자리를 찾자는 주장을 솔선수범하기 위해 연합정부에 참여했던 데 클레르크가 이제 자진은퇴를 결행하고 있다.

비극의 청산이 얼마나 순조로울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후퇴를 잘 하는 장수가 참으로 명장임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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