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북유럽의 강제 不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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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독일인들로 하여금 게르만족의 위대성을 품게 하는데 정신적 배경이 됐던 사람은 독일인이 아닌 체임벌린이란 영국인이었다.

그는 '게르만족 찬미' 로 유명한 작곡가 바그너의 손녀와 결혼했으며, 게르만족의 탁월성을 찬양한 '19세기의 기본사상' 이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빌헬름2세는 이 책을 국비 (國費) 로 보급하는데 앞장섰으며, 히틀러 등장 이후에는 '나치즘 인종신화' 의 바이블역할을 담당했다.

히틀러의 '열등인종 제거' 와 '유태인 말살' 정책도 체임벌린의 영향탓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가령 열등한 인종이 우수한 인종과 교배하면 우수한 인종의 수준은 차츰 저하되며, 그에 따른 육체적.정신적 퇴행으로 온갖 질병이 만연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히틀러는 모든 우생학적 과학을 동원해 지구상에 왕이나 지도자에게만 맹목적으로 충성을 서약하는 건강하고 키가 크며 푸른 눈에 금발인 인종만을 살아남게 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다.

모든 인종에서 열등인자가 제거돼야 한다는 히틀러의 논리는 좀 더 비약한다.

그는 동물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투쟁' 이 굶주림과 성욕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면서 그 투쟁은 언제나 나약하고 병약하고 결단력이 부족한 자를 패배시킨다는 점을 강조했다.

암컷을 위한 수컷의 투쟁에서도 가장 건강한 것에게만 생식할 권리나 그 기회를 부여하듯 인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히틀러가 자신의 '투쟁' 을 어거지로 합리화시킨 대목이다.

히틀러 뿐만 아니라 광신적인 인종학자들조차도 인간의 유전자가 특수한 도덕적 자질이나 특수한 감각의식과 사고방식 등을 전승한다는데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과학적인 인류학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히틀러의 발상과도 유사한 샤머니즘차원의 '인종 신화' 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통과학의 입장에서는 이같은 발상을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한다.

생명공학을 무시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생명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신봉한 '인종 신화' 는 워낙 뿌리가 깊었던 모양이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강제 불임수술' 파문이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등 북유럽 일대로 확산되고 있다.

종전후 30년이 지나도록 그런 비인도적 행위가 되풀이 되고 있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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