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업계 "하늘이 캄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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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 콘티넨털항공의 최고경영자인 고든 베순은 최근 미국 의회 항공위원회에 출석해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늘어가는 재정적자 때문에 비행기를 띄우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저가 항공사들의 시장 공략, 고유가, 테러에 대한 공포 등으로 미국 대형 항공사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보도했다.

◇고유가에 발목=아메리칸.유나이티트.델타 등 미국 대형 항공사들은 지난 5월 좌석의 80%를 여행객들로 채웠다. 거의 신기록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들 항공사는 올 들어서만 3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 말엔 5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의 누적 적자만 230억달러에 이른다. 승객 수는 이미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이전 수준을 넘어섰지만 매출액은 2000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들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유류비의 급격한 상승 때문. 2002년 배럴당 평균 26달러였던 국제 유가가 최근 4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아메리칸.유나이티드.콘티넨털 등 '빅3' 항공사는 올 유류비 지출액이 당초 예상보다 7억달러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지어 저가 항공사로서 52분기(13년) 동안 흑자를 기록했던 사우스웨스트항공이 높은 유류비 때문에 1분기에 3700만달러의 적자를 냈다.

콘티넨털의 베순은 "최근과 같은 유류비 수준에서 살아남을 항공사는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미 유나이티드와 US에어웨이스가 파산을 선언한 뒤 근근이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으며, 델타항공도 파산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경영상태가 악화하면서 1980년대 A등급이었던 항공사들의 회사채는 거의 정크(쓰레기)본드 수준으로 추락했다.

◇저가 항공사의 공세=유가 이외에 대형 항공사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세력을 점차 확장해 가고 있는 저가 항공사들이다. 저가 항공사란 비용이 많이 드는 기내식 등 서비스를 대폭 줄이는 대신 항공권을 싸게 공급하는 회사들로 대형 항공사들이 비실대는 틈을 타 시장점유율을 급격히 높여가고 있다. 항공사들의 시장 점유율을 측정하는 유상 승객마일(RPM, 승객수×비행거리)의 경우 저가 항공사는 1987년 5%에 그쳤으나 92년 12%, 최근 25%로 높아졌다. 2010년 이들의 점유율이 50%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게다가 이들 저가 항공사들은 가까운 거리를 직항로로 운항하던 전통적인 영업방식에서 벗어나 최근 미국~유럽 항로 등 비교적 긴 구간에서도 비행기를 띄우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미국~유럽 항로에서 2000달러였던 항공요금이 299달러까지 떨어지는 일도 발생했다.

이 같은 가격경쟁이 격화되면 경쟁력 없는 저가 항공사들도 퇴출이 불가피해지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대형 항공사들이다. 사우스웨스트.제트블루.에어트란 등 대부분의 저가 항공사는 지난해까지 순이익을 내고 있어 재정이 든든한 반면 대형 항공사들은 적자와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트블루의 관계자는 "우리는 최근과 같은 어려운 영업환경 하에서도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장점들을 갖추고 있다"며 "재무구조가 엉망인 대형 항공사와는 입장이 다르다"고 말했다.

저가 항공권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에 저가 항공사들이 '제공권 전투'에서 승리한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대형 항공사들이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저가 항공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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