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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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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일본 아키타(秋田)현은 4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평균 소득이 최하위권을 맴도는 지역이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 덕분인지 미인을 많이 배출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산업이라야 농업과 수산업이 고작이다. 그런 시골 지역이 ‘교육혁명’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2006년과 2007년 초등학교 6년생과 중학교 3년생을 대상으로 한 ‘전국 학력·학습 상황 조사’, 다시 말해 일제고사에서 도쿄·오사카 등의 대도시를 제치고 2년 연속 전국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아무도 예상 못한 이변이었다. 아키타현 교육청장조차 시험 결과가 발표되면 사죄 회견을 열어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고 각오하고 있었을 정도니 말이다.

일본 언론들이 득달같이 아키타현으로 달려가 그 비결을 취재했다. 아키타의 기적은 복합적이었다. 학교 교육 강화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해 교원을 늘리고 시설을 확충한 지자체의 노력,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에 따라 팀을 나눠 가르치는 수준별 수업, 집에서 자율적으로 공부한 내용을 선생님들이 꼼꼼히 점검하고 격려하는 ‘가정학습노트’ 제도, 방과 후에도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에 대한 과외지도를 마다 않는 교사들의 열정 등이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였다. 어쩌면 모든 지자체와 학교, 교사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아키타현이 실천했을 뿐이었다. 학부모들은 그런 학교와 교사들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한국에서도 ‘임실의 기적’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아키타 못지않은 시골인 전북 임실군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전국 최저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통계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고, 비슷한 사례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평균점수를 깎아먹을 것으로 예상되는 운동부원들에게는 아예 시험을 보지 않도록 한 학교들도 속속 드러났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기억이 있어 검색해 봤더니 40여 년 전 일본에서 횡행하던 수법이었다. 교사가 성적이 처지는 학생의 결석을 은연중에 유도한 사례는 물론 감독 교사가 정답을 알려주거나 부정행위를 눈감아주는 일도 있었다. 교육의 질을 높여 보자는 취지를 무색케 하는 비교육적 행위가 학교에서 판을 치자 일본의 일제고사는 여론의 질책 속에 시행 4년 만에 폐지됐다. 그러다 부활되기까지 43년의 세월이 걸렸다.

공교육 정상화란 기치를 내걸고 야심 차게 도입한 한국의 일제고사가 이러다가 일본과 비슷한 길을 걷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