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는 길] 7.비천한 여성지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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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고노크 라니 할레 (28.여) .그녀는 버림받은 이혼녀다.

결혼전 약속했던 '다헤즈' (지참금) 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월경이 시작될 무렵인 겨우 13살때 릭샤 (인력거) 운전수와 결혼했다.

금.은 목걸이와 귀걸이, 손목시계, 침대등 5천루피 (약12만원) 상당의 다헤즈를 가져온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워낙 가난한 집안이다보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후 시가집의 갖은 구박과 남편의 외면…. 그리고는 결국 이혼당하고 말았다.

벌써 10살이 넘은 딸 둘과 아들 하나는 그녀가 데리고 나와야했다.

그렇게 쫓겨난뒤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일을 하려해도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어 막막했다.

그래서 찾은 곳은 캘커타 갈리가부르 지역의 '아사조띠 니로이' (소망의 빛) 이라는 무료 탁아소. 그녀는 현재 이 탁아소에 아이들을 맡겨놓고 식모살이를 한다.

그녀가 받는 보수는 월3백루피 (약7천6백원) . "난 공부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갔어요. 다헤즈를 내지 못해 이혼당한 것은 둘째치고 당장 살아갈 길이 막막해요. " 그녀는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 탁아소에는 할레와 같은 여성이 많습니다.

모두 약속했던 다헤즈를 내지 못해 쫓겨난 이혼녀들이죠. " 탁아소를 운영하며 30여명의 이혼녀들의 자녀를 맡아 교육시키고 있는 수크리트 로이 목사 (37) 의 말이다.

이처럼 인도에서는 해마다 상당수의 결혼한 여성들이 다헤즈를 마련해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집에서 쫓겨나는 일이 다반사다.

심지어 92년 9월 뭄바이에 사는 한 젊은여성이 친정아버지가 다헤즈를 지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집식구들에 의해 전기충격을 받은 끝에 사망한 사건이 발생, 인도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이같은 다헤즈풍습은 20세기초 힌두교 교인들 사이에 신분상승 수단으로 이용됐다.

당시 신분이 낮은 집안이 신분을 높이기 위한 한 방법으로 지체가 높은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는 정략결혼이 성행했는데, 결혼식때 다헤즈가 오갔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 풍습이 모든 계층으로 확산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폐습이 골치아파 아예 딸을 낳지 않으려는 경향까지 나타나 인도당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인도여성은 엄청난 남성위주사회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남편이 죽으면 남편 시신을 화장 (火葬) 하는 불길 속에 몸을 던지는 '사띠' 라는 악습도 있었다.

통상 인도여성은 카스트제도의 4계급 가운데 최하층인 수드라와 동일시된다고 한다.

여성에게 덕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은 남편에게 헌신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전통적으로 인도 여성들은 남편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기를 원한다.

'사띠' 와 같은 악습은 없어졌지만 남편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은 경제적.사회적으로 여전히 고통이다.

과부들의 재혼은 엄격히 금지된다.

하지만 오늘날 인도 사회도 점점 개방화의 물결을 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지난 91년부터 인도가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펼치면서 의사.회계사.언론인등 전문직으로 진출하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뉴델리 네루대에서 경영학 박사과정에 있는 루파 바가 (26.여) 는 "인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며 "나는 혈혈단신으로 한국에서 유학생활도 했으며 결혼도 30세전에는 생각할 마음이 없다" 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도 "세상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마음에 딸의 단신 유학을 허용했다" 면서 "인도에서 여자 수상 (인디라 간디) 도 나오지 않았느냐" 고 반문했다.

캘커타에 사는 가베리 소카 (40.여) 는 "요즘에는 아들 선호사상이 많이 없어졌다.

아들없이 딸 하나에 만족하는 사람도 많다" 고 말했다.

사실 인도에서 여성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은 부단이 있어왔다.

인도의 국부 (國父) 마하트마 간디는 "신이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일한 재능을 부여했다" 며 여성들은 모든 활동에 참여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인도에서는 재산상속과 혼인.이혼.양육권.교육.고용등과 관련, 여성지위 향상을 위한 많은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런 법들도 각 주마다 고유한 전통과 갈등을 빚어 실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개방화는 여성에게 화이트칼라나 전문직으로의 길을 열어주었고 여성의 지위향상에 어느정도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이는 대도시 극히 일부에 해당할 뿐 절대다수의 여성들에게 '여권 (女權)' 이란 아직도 먼 꿈같은 이야기다.

캘커타 =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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