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료보험 통합 문제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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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는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지 20년 되는 해로 대다수 국민들은 이 제도를 통해 질병을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을 서구국가처럼 직업과 지역을 토대로 조합을 설립해 관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의료보험제도가 조합으로 분산관리돼 부자는 부자끼리,가난한 지역주민은 지역주민끼리 따로 하기 때문에 의료보험조합이 적자도 나고 소득재분배 기능도 상실되며 관리의 효율성도 상실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당장 통합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언뜻들으면 그럴듯하나 우리 현실을 면밀히 분석하면 통합 주장은 매우 허구적이다.

먼저 의료보험의 적자와 소득재분배 문제는 조합방식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 있다.

자영업자들은 국세청에 연1회 자진신고를 통해 소득을 밝히기 때문에 도시 자영업자의 경우 25% 정도의 주민만 소득관련자료가 있으며, 또한 실제 소득에 비해 턱없이 낮게 신고해 보험료 부과를 제대로 하기가 어려워 적자를 내게 돼 있다.

이러한 계층을 근로자와 통합관리하면 오히려 문제를 확대시킨다.

특히 88년및 93년의 통계청 표본조사 결과를 보면 근로자보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더 높다.

이러한 현실에서 통합하면 결국 보험료부담은 근로자 몫이 되고, 근로자들은 소득세 부담에 이어 보험료 부담까지 자영업자분을 떠맡게 되므로 통합모형은 실소득이 낮은 근로자가 실소득이 높은 자영업자들을 도와 주는 모순을 일으킨다.

통합이 의료보험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주장도 허구성이 있다.

의료보험의 효율성은 관리운영비와 의료비 절감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먼저 관리운영비면에서 단일통합은 결코 효율적이지 못하다.

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부지역의 시.군조합이 통합돼 관리비를 절감한 바 있다.

그러나 2개 조합을 하나로 하는 것과 전국을 1개로 하는데는 차이가 있다.

2개 조합을 하나로 할 때는 의사결정구조의 변화가 없으나 전국을 1개 조합으로 할 경우에는 각 시.도에 지부를, 구.시.군에 출장소를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의사결정구조가 다단계가 된다.

이럴 때 일어나는 관료화는 결코 관리비절감을 장담할 수 없다.

통합보다 조합규모의 적정화가 더 합리적이다.

의료보험에서 가장 중요시돼야 하는 효율성은 관리비보다 의료비 절감에서 찾아야 한다.

의료보험을 통합하면 재정관리책임이 이사장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나, 조합으로 분산관리하면 조합대표들이 재정관리에 책임이 있어 경쟁적으로 의료비절감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의료보험은 다른 사회보험과 달라 보험증이 주어지면 의료남용이라는 문제가 일어난다.

보험관리는 이러한 남용을 제대로 억제하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의 의료비용은 농어촌 할 것 없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남용에 대한 관리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조합들을 경쟁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이미 입증돼 조합간 경쟁모형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인데도 통합코자 한다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95년3월 통합방법으로 전국민 의보를 달성한 대만이 불과 2년만인 최근에 의료보험의 경쟁모형 개발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현재의 조합을 경쟁시키는 정책의 선택이 더 합리적이라 하겠다.

이규식 연세대교수(보건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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