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 ‘봉사왕 만학도’ 학사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대학생·강사·자원봉사자·여성교육자·아내·어머니 ….

20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야간)를 졸업하는 ‘봉사왕 만학도’ 박건옥(53·사진)씨의 역할이다. 박씨는 이런 일을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지만 주위에서 ‘시간을 굴리며 살아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뒤에서 잘 조정하며 슬기롭게 살아간다는 뜻이란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49세 때인 2005년. 92년부터 17년간 해온 자원봉사 활동을 보다 체계화·이론화하겠다는 욕심에서였다. “공부를 하며 하나하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이 너무나 컸습니다.” 배우는 기쁨에 학업에도 충실, 그의 졸업성적은 평점 4.5점 만점에 4.0이 넘을 정도로 우수하다.

그렇다고 봉사활동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매주 2~3일씩 홀로 사는 노인 7~8명을 찾아다니며 말벗이 되어주거나 청소·식사수발 등 노력봉사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구대에 같이 입학, 졸업하는 둘째아들 기태(27·지역사회개발·복지학과)씨와는 등·하교를 따로따로 해야 했다.

박씨는 봉사활동 공로로 재학 중이던 2005년 보건복지부장관상, 2008년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또 이 공로로 졸업식 날 총장상(공로상)까지 받는다.

그는 대구중구시니어클럽·노인대학에서 4년째 사회복지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에게 직장·가정·봉사활동의 노하우를 가르치는 것이다. 전국주부교실 대구지부 감사로 여성교육에도 열심이다.

그의 활동에는 91년 대구대 사회복지개발대학원을 졸업한 남편 김성조(59)씨는 물론 2003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큰아들 사헌(28)씨, 둘째아들 기태(27)씨가 동행하곤 한다. 기업체에서 은퇴한 남편은 현재 중구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상담사와 어린이재단 한글 강사로, 사헌씨는 어린이재단 창원본부에서 일하는 등 일가족 모두 봉사활동을 하거나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이번에 박씨와 둘째아들이 대구대를 졸업하면서 일가족 모두 대구대 동문이 된 점도 특이하다.

박씨는 “봉사활동은 자신을 스스로 돕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봉사활동을 통해 자신의 정신이 건강해지고 결국 자녀·남편에게 잘 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이 같은 봉사활동 덕에 두 아들이 반듯하게 자라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을 열고 겸손한 자세로 상대방을 인정하면 편해진다”고 강조한다. 박씨의 열정은 여전하다. ‘사회복지 전문가’로 제2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아들 기태씨와 함께 대구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다.

황선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