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JAL 점보기 추락…일본은 이렇게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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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한항공기 추락사고가 7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지난 85년 8월12일 발생한 일본항공 (JAL) 보잉 747점보기 추락사고의 수습과정이 새삼 교훈거리로 떠올려진다.

JAL사고는 추락직전 승객들이 유서를 남기는등 일본인의 침착성을 보여줘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수습과정도 선진국답게 매끄러웠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당시 일본의 정부.유가족.항공사가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사고원인을 파헤치고 사고해결을 해나간 과정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항공사고사에 남을 일로 지적되고 있다.

당시의 수습과정을 재점검해본다.

(사고원인 규명)

보잉사는 9월7일 "사고 비행기는 7년전에도 중대한 정비잘못을 저질렀다" 는 성명을 발표, 사고원인을 JAL의 정비 불량쪽으로 몰고 갔다.

그러나 일본측은 한달동안 주변을 샅샅이 수색해 떨어져 나간 꼬리 부분을 완벽하게 복원, 공개했다.

일본 항공우주기술연구소는 3천배 이상 확대 가능한 최신 전자현미경으로 정밀 분석, 사고의 근본원인이 점보기의 압력격벽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과학적인 근거에다 JAL이 최대 고객이란 점을 감안, 보잉사는 손해배상은 물론 취항중인 모든 점보기의 압력격벽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를 실시했다.

86년 2월 JAL은 "더이상 당신들의 안전관리를 믿지 못하겠다" 며 보잉의 시애틀 본사와 공장에 특별사찰팀을 파견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과 안전을 자랑하던 보잉사는 점보기 생산과정 전반에 걸쳐 처음으로 외부의 특별사찰을 받는 굴욕을 감수했다.

(정부의 조치)

매일 현장에 3천여명의 경찰과 공무원을 투입, 15일만에 희생자 5백20명의 시체를 모두 찾아냈다.

그 이후 의사.치과의사의 협력을 받아 조각난 시체를 일일이 꿰매 시신을 되도록 완벽하게 복원한 후 신원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4개월동안 5백18명의 신원이 확인됐지만 나머지 2명은 끝내 시체확인이 불가능했다.

일본경찰은 12월21일 "두사람의 시체는 거의 완전히 분해돼 현대 의학으론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 고 공식발표, 유기족의 동의를 거쳐 합동화장했다.

일본 운수성은 사고를 계기로 "JAL의 사고체질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놓겠다" 며 정밀 입회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반관반민 (半官半民) 이던 JAL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단행됐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中曾根康弘) 당시 총리는 사고 수습을 위해 3개월동안 좋아하던 골프를 완전히 끊기도 했다.

(JAL의 조치)

JAL은 사고 이후 10년동안 유가족들이 사고현장을 둘러보거나 위령제를 지낼 때 일체의 비용을 부담했다.

또 유가족들이 추락현장 부근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산 중턱까지 도로를 개설했으며 현장부근의 합동위령소는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당시 사고기를 직접 정비하지 않았지만 하네다 (羽田) 공항 정비책임자인 도미나가 히로 (富永弘雄.당시 59세) 는 "유가족에게 속죄한다" 는 유서를 남기고 사고 한달만에 자살했다.

또 다카기 (高木) 사장은 오사카에서 사고소식을 접하고 하네다공항으로 달려나온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사고책임을 물어 해임당한 그는 그해 12월21일 열린 납골봉양식에 신임 야마지 (山地) 사장과 함께 다시 나타났다.

다카기는 "사고는 인재 (人災) 였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 이라고 다시한번 무릎을 꿇었고 야마지사장은 "두번 다시 사고를 일으키지 않겠다" 고 약속했다.

JAL은 이후 12년동안 일체의 인명사고를 내지 않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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