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바람]고등학생의 일과 …일.외화벌이로 공부는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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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에 사는 친구들은 지금쯤 메뚜기잡이와 농촌지원에 정신이 없을 거예요."

평안남도 문덕군 용남리 용남고등중학교 6학년 (고3 해당)에 다니다 지난해 아버지와 함께 귀순해온 許금순 (19) 양. 許양은 "농촌학생들은 여름방학 기간의 대부분을 외화벌이및 노력동원으로 보낸다" 며 "학창시절 공부보다는 이런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 털어놓았다.

許양이 살던 문덕군은 대표적인 농촌지역. 모내기철이 되면 학생들은 방과후에 수시로 농촌지원을 나가야 한다.

한창 일손이 모자랄 때는 무려 한달씩 공부를 중단하고 모내기.강냉이 심기에 동원된다고 한다.

여름에 학생들이 잡는 메뚜기는 전액 일본으로 수출돼 짭짤한 수익을 올린다고 許양은 말했다.

벼베기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농촌 학교들은 난방용 땔감을 확보하기 위해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許양은 "11월이 되면 3일씩 공부를 중단하고 근처 산에 나무하러 간다" 면서 "교장실.교사실 등에 땔 나무를 학급당 한 트럭씩 모아야 한다" 고 말했다.

교실에서 땔 나무는 그날그날 불당번이 집에서 한단씩 가져오거나 산에서 구해와야 한다.

계절과 관계없이 농촌이나 광산의 생산현장에 가서 노래를 불러주는 선전대활동도 농촌학생들이 해야 할 빼놓을 수 없는 일의 하나다.

許양 또래들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역시 소풍과 견학. 소풍은 봄.가을 두차례 간다.

대개 김일성 (金日成) 의 항일투쟁유적지에 가며 보물찾기.노래부르기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許양은 서울에 와서 사귄 친구들에게 "백두산에 가보지 못했다" 고 말하면 친구들이 놀라는 표정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백두산이나 평양 구경은 한국에서 해외나들이 하는 것만큼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 북한에서도 '불량청소년' 문제는 골칫거리다.

담배 피고 술 마시고 옷차림이 색다르면 불량학생의 범주에 낀다.

許양이 다니던 학교는 한 반 26명씩 모두 2개반에 남녀비율은 반반. 이중 남학생 절반은 담배를 피웠으나 여학생은 한명도 없다고 한다.

특히 도시는 불량정도가 심해 여학생 임신 소문도 나돌 정도라고 許양은 밝혔다.

고중생들의 불만은 무리배치 (집단배치) 와 성분차별이다.

남학생들은 졸업후 대부분 군에 입대하고 신체검사 불합격자는 직장 혹은 대학으로 갈 수 있다.

여학생중 대학에 가는 경우는 흔치 않고 주로 농촌이나 공장.광산 등에 무리배치 되는데 대체로 농민자녀는 농장에, 노동자 자녀는 공장에 각각 배치된다고 許양은 말했다.

농촌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여학생의 경우 상점판매원.호텔봉사원 등이고, 남학생의 경우는 사회안전원.군관 등이다.

성분차별에 대한 불만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심해진다.

공부 잘하던 학생이 5~6학년에 올라오면 "공부해서 뭐하나" 는 고민에 빠지기도 하는데 십중팔구는 성분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는 경우라고 한다.

許양은 범죄자에 대한 공개처형이 매우 충격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같은 마을의 20대 청년이 민가에서 도둑질하다 들키자 할머니를 살해한 죄로 공개처형을 당했다.

주위에선 '저런 자식은 죽어도 싸다' 고 했지만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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