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機 추락참사]"다 왔구나" 순간 굉음속 곤두박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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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꽝, 꽈꽈꽝…. " 서울을 출발한 대한항공 801편이 6일 0시55분 (한국시간) 괌 아가냐공항 남쪽 4.8㎞ 밀림 위에서 굉음을 내고 검은 불길에 휩싸였다.

비행기가 니미츠산과 부딪치는 순간 랜딩기어가 산에 걸리면서 객석 앞쪽에서 화재가 발생, 뒤쪽으로 번져나갔다.

2층 조종실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

비행기 주변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사고비행기를 탔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洪현성 (35.미국 국적) 씨는 "비행기 천장이 잘려나갔고 유리창 위로 나무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굉음이 났다" 고 말했다.

앞쪽에서 세번째 좌석인 3B에 앉았던 洪씨는 충격으로 앞으로 처박혔으나 다행히 가슴에 가벼운 타박상을 입는데 그쳤고 부서진 창문틈을 뚫고 탈출에 성공했다.

비행기에서 훌쩍 뛰어내린 洪씨는 화상을 입은 20대 아가씨를 구조해 낸 뒤 옷을 찢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현장을 선회하는 헬기에 사고지점을 알렸다.

주변에서는 "살려달라" 는 애원이 빗발쳤지만 폭발음에 묻혀 제대로 퍼져나가지 못했다.

洪씨는 다시 비행기 부근으로 달려가 "몇명 있느냐" 고 물었고 "4명 있다" 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비행기가 폭발할 것을 염려, 현장에 접근하지는 못했다.

잠시후 앰뷸런스의 긴박한 사이렌소리가 들렸고 구조대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구조대원들은 산악지대인데다 기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구조에 애를 먹었고 비명소리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이날 비행기는 사고직전 예정 착륙시각을 이미 10분가량 넘겼고 기체가 몇차례 심하게 흔들리면서 불길한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승객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곧바로 랜딩기어가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다.

현지에는 비가 많이 내렸으나 관제탑에서 착륙을 승인할 정도여서 악천후로 분류되지는 않았다.

승객들은 몇시간 뒤 아름다운 여름 휴양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는 꿈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 순간 박용철 기장은 "엔진에 불이 붙었다" 고 관제탑에 긴급 타전했고 이후 통신이 두절됐다.

같은 시각 하와이 호놀룰루 미군 태평양사령부에도 같은 내용이 타전됐다.

착륙을 기다리던 대한항공 괌지사는 공항 관제탑에 "비행기가 아직 안들어왔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 고 물었고 관제탑으로부터 "뭔가 잘못됐다 (Something wrong)" 는 답을 듣는 순간 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났다.

괌 =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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