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객관성 부족한 '탄핵방송 보고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언론학회 박명진 회장이 손수 문제의 '탄핵방송 보고서'를 옹호하고 나섰다. 정치적으로 편향된 연구자들에 의한 개인적 수준의 보고서가 학회 이름으로 공개된 데 대해 많은 회원이 의문을 갖고 있는 시점에 학회장이 나서 입장 표명을 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 내용에서도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박 회장은 자천.타천의 공모과정을 통해 "프레임 분석과 담론 분석 같은 비판적 연구 영역의 질적 분석에도 정통한 연구 인력을 포함, 탄탄한 전문성을 갖춘 연구진을 구성했다"고 했다. 그러나 6명의 연구원 중 '비판적 연구영역의 질적 분석에도 정통한 연구인력'은 단 한사람도 없다. 과거 비판적 연구영역을 잠시 스쳐간 인물이 있을 뿐이다. 더구나 두 책임연구원은 특정 정당에 기운 글을 써온 분들이다. 언론학회의 위치를 고려할 때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천'의 의미도 투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박 회장은 보고서가 학술적 전문성이나 분석의 엄밀성이 탁월해 '연구 결과에 불만인 분들도 연구 수준의 질적 우수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과연 그런가. 학술적 전문성과 분석의 엄밀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객관성이다. 객관성을 상실하고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연구영역에 투영하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전문성과 엄밀한 분석도 학술적 가치가 떨어진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마는 법이다. 이때 이론과 방법론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두 책임연구원의 정치적 선호는 존중한다. 그러나 그것이 객관적 연구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형식적 틀은 깔끔하게 짜여 있어도 결과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질적으로 우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판단을 일부의 '불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박 회장은 '일부에서는 보고서가 기계적 중립성만 주장했다고 하는데, 그런 지적은 양적 분석의 부분만 보고 질적 분석을 읽지 않은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추측했다. 이 추측은 연구원들이 질적 분석의 일환으로 비판적 담화분석이라고 해놓은 그물에도 여지없이 걸린다. '일부' '기계적 중립성만' '부분만' '생각된다'는 표현은 '뚜렷한 근거없이 미래를 예측하거나 현상을 진단할 때 사용'(보고서 126쪽)하는 것일 수 있고, '사실 확인이나 진실 검증을 위한 노력 없이 추측성 표현을 남발하는'(128쪽) 행위일 수 있는 것이다.

보고서를 보면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특히 탄핵이 가결된 당일 방송사들은 분노.망연자실.비통.울분 등의 평가적 형용사들을 활용'했고, 그 이후 탄핵에 대한 반대여론이 고조되면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올라가자 '크게 고무된 모습'(서울방송.3월 13일)이나 '여유있는 모습'(문화방송.3월 15일)으로 바뀌었다고 돼 있다. 반면 야 3당에 대해서는 '탄핵 가결을 '밀어붙였다'거나 야3당의 '치밀한'공조가 있었다는 표현은 평가적 동사나 형용사의 활용 사례이며, '방송의 공정성을 계속 트집잡고 있다'(한국방송.3월 18일), '엉뚱하게 방송에 화풀이를 하고 나섰다'(한국방송.3월 20일), '국민의 뜻을 겸허히 살피기는커녕 방송을 공격한다'(문화방송.3월 19일)는 표현은 공정성 논란과 관련된 판단 표현의 예'(138쪽)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분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보고서는 총체적으로 '분석 결과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대체 위에 예시한 담론 중에서 공정하지 않은 표현이 무엇인가. 스웨덴의 정치학자인 웨스터스탈이 제시한 뉴스 객관성의 구성 요소에 따르면 객관성은 사실성과 공정성으로 구성되며, 이 중 공정성은 '반대 해설 및 견해와 보도상 중립성 간의 균형있는 조합을 통해 달성'되는데, 이러한 요소들로 구성되는 객관적 보도는 '사실뿐만 아니라 가치를 다루는 것을 포함해야 하며, 사실이라는 것 또한 평가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정의한 바 있다. 위 담론들에서 사실성의 왜곡이 없으며, 그 사실에 대한 평가를 내린 점도 공정성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

박 회장은 이 보고서를 정치적 논쟁의 수단으로 삼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보고서 자체가 편향된 책임연구원에 의해 정치적으로 작성되었는데 어찌 정치적 논쟁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박 회장은 무조건 옹호하기 전에 무엇이 잘못되었나부터 꼼꼼히 점검해주기 바란다.

김동민 한일장신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