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순원 父子의 이색 테마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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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름이다. 모두들 짐을 꾸려 더운 도시를 탈출한다.

산이든 바다든 좋다.

아직 떠나지 않았다면 여름이 가기 전, 방학이 끝나기 전 우리의 걱정스런 아이들과 함께 하루 이틀의 짧은 길이라도 떠나기 바란다.

지난해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인 큰아들 상우와 대관령 정상에서 그 아래 할아버지댁까지 함께 걸어내려갔다.

아이는 이제 충분히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나 역시 오래전부터 아이와 함께 그 길을 걷고 싶었다.

길을 걸으며 서울에서 할아버지댁에 이르는 대관령의 길 이야기와 그 길만큼이나 오래된 집안 이야기, 조상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 그러면서 이 다음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삶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 들려주고 싶었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어 떠나는 이번 여행길 역시 그랬다.

나는 이번 여행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떠났다.

비록 며칠만이라도 원고에서 손을 놓고 싶었고, 오직 아이와의 여행에만 충실하고 싶었다.

일주일간의 여행 중 닷새는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우리만의 '테마 여행' 을 하기로 했다.

많이들 해외여행을 떠나지만 그전에 아이가 우리의 땅과 하늘과 그 사이의 길과 나무와 들풀 그리고 그곳에서 숨쉬는 사람들의 삶과 숨결을 먼저 알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 나는 아이와 함께 방학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전업작가의 입장이라 미리 원고만 써놓으면 언제든 시간을 낼 수가 있었다.

해서 이번 여름방학을 아들보다 정작 내가 더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더위만 피해서 산과 바다를 찾는 여행은 전에도 매년 떠났다.

철마다 며칠씩 휴식을 위한 여행도 떠났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좀더 특별한 의미가 되도록 나도 아이도 충분히 기다렸다.

"지난 이태 동안 아빠는 주로 고향을 무대로 소설을 썼고, 이번 방학에 강릉 할아버지댁에 가 있는 동안 아빠 소설속의 무대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 그 얘기를 한 것이 지난 6월이었다.

아이도 좋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충분한 준비가 필요했고 그럴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에게 최근 이삼년 동안 쓴 내 중.단편 소설들을 주었다.

여름이면 메밀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봉평과 대관령을 주무대로 양부 (아부제) 양아들이 노새를 끌고 함께 길을 걷는 '말을 찾아서' , 대관령의 한 봉우리를 이루는 선자령 아래의 보현사와 경포 호수를 무대로 한 '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 , 30여년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강릉가는 옛길' , 강릉에서 남쪽으로 6㎞쯤 아래, 예전 시내버스가 없던 시절 교행선도 없이 간이역만 달랑 서있던 시동을 배경으로 한 '시동에서' 와 한계령의 다른 샛길을 내가 다시 이름붙인 '은비령' 을 아이는 거의 한달간의 시간을 두고 읽었다.

어머님이 꼭꼭 가슴에만 묻어둔 이야기를 다룬 '수색, 그 물빛 무늬' 도 목록에 넣었지만 그건 지난해 대관령을 떠나기 전 내가 아버님 어머님 일로 마음고생을 할 때 아이도 읽었다고 했다.

그걸로 아빠와 아들이 아빠가 쓴 소설 속의 무대를 찾아보는 우리 나름대로의 테마여행의 준비는 충분히 갖추어진 셈이었다.

여행 방법도 정했다.

몇날 며칠을 길 위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찍 할아버지댁에서 출발해 저녁이거나 밤늦게 할아버지댁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이효석 선생의 '메밀꽃 필 무렵' 과 내 소설 '말을 찾아서' 의 무대를 이루는 봉평만은 서울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 중간에 들러 그곳의 메밀밭들과 물레방앗간, 그리고 봉평 장터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 여행을 위하여 따로 한 준비는 내 것과 아이 것의 밀짚모자를 사는 것과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담을 카메라 한 대, 그리고 그 카메라와 틈틈이 목마를 때 마실 물을 넣을 배낭 하나가 전부였다.

이번 여행에서 아이에게 나는 비록 아이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작품 무대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과의 친화력을 길렀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그러나 일부러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기로 했다.

내가 아이의 가슴에 무엇을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 스스로 느끼고 채워가길 바랐던 것이다.

첫날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뒷산에 올라가 저멀리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돋이를 구경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닷새째 대관령 삼양목장의 정상 능선에 올라가 다시 저멀리 서쪽 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이번 테마 여행을 끝내기까지 우리는 참으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참으로 많은 것을 보았고, 또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며, 그것들을 가슴에 채웠다.

예전에 아빠가 처음 대관령을 걸어넘던 이야기도 하고, 대관령 너머 횡계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곳을 둘러보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감자밭과 옥수수밭 고랑을 걸으며 찌는 더위 아래 구슬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가 흘리는 땀방울이 구슬처럼 크고 굵어 구슬땀이라고 부르는 것만은 아니다.

들일을 하며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가 구슬처럼 귀한 것이기에 그렇게 이름붙인 것일 거라는 이야기를 나는 오히려 아이에게 들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어느새 아이가 푸른 나무처럼 자란 것이다.

찌는 태양 아래 여물고 있는 밭고랑을 걸으며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는 기쁨과 보람을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돌려준다.

때로는 장난기를 발동해 대관령 옥수수밭을 지나던 길, 내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처럼 아이와 함께 옥수수 서리를 해 그것을 냇가에 앉아 구워먹기도 했다.

내가 잘 익은 옥수수를 고르는 법과 그것을 소리 나지 않게 따는 서리의 시범을 보이고, 아이에게 그것을 따오게 하고, 그것을 구워 함께 냇가에 발 담그고 앉아 두줄짜리 옥수수 하모니카를 불었다.

그때 조심스럽게 다가와 우리 발가락을 간지럽히던 차항계곡의 송사리떼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해가 져 어둠이 내린 다음 바람이라도 불면 마치 산에 사는 큰 짐승의 숨소리처럼 서걱이던 옥수수밭 길을 부자가 함께 '말을 찾아서' 속에 나오는 '아부제' 와 양아들처럼 별다르게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러면서도 꼭 무슨 말을 할듯 몇번이고 "아빠" , "상우야" 하고 부르며 굳게 손을 잡아보았다.

선자령 아래 보현사로 가던 길. 아무도 몰래 숲속에 숨어 익은 산딸기 밭을 발견하고 그것을 따 빈 물통을 가득 채워 돌아오던 늦은 밤길. 함께 손을 잡고 걸어오며 들었던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도 아이는 그날 걸었던 밤길 만큼이나 오래 기억할 것이다.

옛날 방식으로 늦은 밤 횃불을 들고 나가 했던 고기잡이와 가재잡이도 오래 남을 추억거리일 것이다.

아이로선 이제까지 책에서 보거나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매미의 우화 (羽化) 과정을 바로 코앞에서 몇 시간 동안 꼼짝도 않고 지켜본 것도 이번 여행의 커다란 수확이 되었을 것이다.

마른 땅에서 작은 구멍을 뚫고 나온 매미 번데기가 힘겹게 우리 앉은키 높이의 작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와 아프게 등가죽을 찢고 머리를 내밀고, 등과 배를 내밀고, 마지막 단계로 조심스럽고도 곱게 날개를 펴서 그것을 말리는 동안 아이는 숨소리조차 죽이고 경이의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잡아봐. 아직 날지 못할 거야. " 일부러 아이에게 그렇게 말해보았다.

"아뇨. 이젠 다른 매미도 잡지 못할 것 같아요. " 그것은 한 생명의 탈바꿈이 아니라 한 생명의 새로운 탄생과도 같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었다.

평생에 단 한번, 그리고 며칠 동안 하늘을 날기 위한 날개를 얻기 위하여 매미는 10년도 넘게 땅속의 어둠을 견디며 날개만을 꿈꾸었을 거란 걸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아니 말해주기 전에 눈으로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이제 땅위를 기거나 날아다니는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서 아이는 분명 어제와 다른 생각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생명의 탄생을 아이와 함께 지켜보았다.

같은 동네에서 나고 같은 동네에서 자란 친구 목장에서 그날밤 송아지를 낳았다.

다음날 아침 아직 몸에 태를 두르고 있는 새 생명을 아이는 지난밤과는 또다른 감동으로 지켜보고 쓰다듬어보고 했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부터 홀로서기 위해 몇번이고 다리에 힘을 주고 버둥거리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다리를 세웠다가는 이내 후들거리며 안타깝게 쓰러지곤 했다.

어린 생명의 홀로서기를 아이는 아이나름의 방식으로 느끼고 바라보고 했을 것이다.

'은비령' 을 넘는 산길에서도 아이는 이제까지 수도 없이 묻고 가르쳐주고 했던 들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묻고 또 묻고 했다.

지난해 대관령을 걸어넘을 때보다 아이가 더 많은 들풀들과 나무들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아빠인 내 눈엔 그저 대견해 보일 뿐이었다.

처음부터 다 알고, 다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도 언젠가는 들풀과 친해지고 나무들과 친해질 것이다.

밤 할아버지댁으로 돌아와 마당에 모깃불을 피우고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별자리 또한 아직 아이는 그것을 정확하게 되짚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별이 하늘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누워있는 얼굴 위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눈속으로 쏟아지듯 떨어지던 느낌만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늘 그 자리에 돋아나 빛나는 별빛처럼 영롱할 것이다.

해가 진 대관령 목장 너머로 둑 터진 바닷물처럼 밀려들던 저녁노을과 그 노을에 곱게 물들던 풀잎 끝의 물방울들도 아이에겐 영롱한 이미지로 남아 험난한 앞날을 아름답게 헤쳐나가게 할 것이다.

단지 나는 먼저 그 길을 다녀와 이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길 위에 흩어져 있는 보석들을 아이들 스스로 하나하나 가슴에 담게 하자. 아이가 자연과 함께 이야기하고, 그 속에 하나하나 우리 삶과 자연을 새롭게 발견할 그런 의미있는 여행을 떠나자. 그러면 우리의 아이들은 우리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전하고 사려깊다는 뿌듯함과 희망을 우리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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