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없는 섬마을 소년, 자사고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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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소년은 바다를 바라보며 훌륭한 사업가가 된 자신의 모습을 늘 머릿속에 그렸다.

그러기 위해 기회가 많은 뭍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소년은 대도시 학생도 가기 힘들다는 명문 자립형 사립고인 전주 상산고를 목표로 잡았고, 지난해 말 그 꿈을 이뤘다. 꿈을 이뤄준 일등공신은 인터넷이었다.

전주 상산고에 합격한 울릉북중학교 박민혁군이 학교 컴퓨터실에 앉아 있다. [정현목 기자]


기적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1리 울릉북중학교 박민혁(16)군이다. 학교는 울릉도의 외진 곳에 있다. 이 섬의 관문인 도동항에서 버스로 한 시간 가야 한다. 전교생 26명에 교사는 8명이다. 그 흔한 학원이나 PC방이 없다. 서점도 없다.

민혁이의 성공담은 울릉도를 떠들썩하게 했다. 12일 졸업식에서 원명철 교사는 민혁이를 꼭 껴안고 “너를 통해 우리도 배운 게 많다”며 “후배들도 큰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민혁이는 지난해 9월 실시된 경북 지역 학업성취도 평가고사에서도 공동수석을 차지해 ‘경북학생상’을 받았다. 민혁이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울에서 울릉도로 전학 왔다. 목사인 아버지 박호철(46)씨가 천부리의 작은 교회로 부임했기 때문이었다. 민혁이가 자사고 진학을 목표로 한 것은 2학년 말. 아버지가 “형편을 탓하지 말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길이 있다”고 권고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자사고 입학에 필요한 토익 시험부터 준비했다. 인터넷으로 토익 교재를 사 넉 달간 동영상 강의에 집중했다. 그 결과 지난해 여름 820점을 받았다. 중1 때부터 영어소설 테이프를 계속 들은 것도 도움이 됐다. 경북 포항의 한동대와 연계한 화상 수업에도 집중했다. 울릉북중 김원호 교장은 “울릉도에는 원어민 교사가 오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이 화상수업으로 원어민 교사를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유명 학원의 인터넷 강의와 EBS 동영상 강의를 들으며 학교 수업을 보충했다.

다른 학생들도 박군의 이런 방식을 따라 했다.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울릉북중의 평균 성적이 경북 전체 평균보다 17점 높았다.

아버지 박 목사는 지난해 10월 아들의 토익·한국어능력시험 성적표를 상산고에 보냈다. “아들이 상산고에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편지를 함께 보냈다. 상산고는 곧바로 임현섭 교감과 정해춘 수학교사를 울릉도에 보내 박군의 수학실력과 인성·환경 등을 평가했다. 1차 테스트 결과는 ‘수학 능력 충분’ 이었다. 민혁이는 열흘 후 상산고에서 실시한 국어·영어 테스트를 통과했고 지난해 11월 초 꿈을 이뤘다. 상산고가 지난해 처음 도입한 입학사정관 전형의 첫 수혜자가 된 것이다. 상산고는 박군에게 수업료 면제 등 장학 혜택을 주기로 했다.

상산고 임현섭 교감은 “박군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며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해 제2, 제3의 민혁군을 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군은 “벽지 학생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릉도=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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