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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실기업 대책 '진퇴양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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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도 한보사태를 겪으면서 대형 부도사태를 어느 정도 예상했다.

그래서 내놓은 대표적 대책이 부도유예협약제도였다.

대형 부도가 불러일으킬 도미노현상을 우려해 마련했던 비상대책이었다.

한꺼번에 몰아닥칠 충격을 우려해 시간을 벌면서 금융기관들끼리 상의, 처리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또다른 이유는 한보사태에 혼이 난 정부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정부가 개인기업 문제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 는 것이다.

당사자가 알아서 하되 그래도 안되면 관련은행들이 의논껏 해보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계속 터져 나오는 부도사태는 부도유예협약 정도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게 문제다.

정부는 손을 털었다고 해도 연속 대형 부도속에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6개월이 지나도록 한보사태가 아무런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고, 우성의 한일그룹 인수는 1년6개월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정부 역시 뾰족한 수를 낼 수 없는 처지다.

이런 형편에 기아가 터지고, 또다른 대기업들의 부도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다.

재정경제원 고위당국자는 "정부로서는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는 셈" 이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세계무역기구 (WTO) 때문에 정부가 마음대로 지원할 수도 없을뿐 아니라 기업 스스로 초래한 경영부실의 책임을 어떤 원칙아래 정부지원을 할 것이냐가 고민이라는 것이다.

한편 통상산업부의 한 당국자는 "대통령선거가 끝날 때까지는 정부안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은 어려운 상황" 이라고 털어놓는다.

선거열기가 갈수록 치열해 갈텐데 누구인들 경제논리만을 고수하며 대책을 내놓겠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현상태에서 예상할 수 있는 정부대책의 초점은 발등의 불인 기아문제를 수습하는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아 자체보다 협력업체의 연쇄도산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므로 이를 막기 위한 금융지원 대책이 우선순위 첫번째. 하청업체들의 진성어음을 일반대출로 전환시켜주는 것이 기왕 발표된 정책이지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특별지급보증한도를 계속 늘려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의 개별기업에 대한 직접지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차선책이다.

그 다음은 은행에 대한 한은특별융자다.

한국은행측은 적극적이나 오히려 재경원이 소극적이다.

시간문제이지 금융현실을 감안하면 한은특융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기아 스스로의 자구노력이다.

정부가 특융을 포함한 지원대책에 뜸을 들이고 있는 이유도 기아나 제일은행등 당사자들의 자구노력이 미흡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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