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빌딩의 저주’와 中 경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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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하늘은 한때 분주한 고공 크레인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요즘 크레인들이 멈춰 섰다. 흥청거리던 두바이 경제가 글로벌 위기의 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이른바 ‘초고층 빌딩의 저주(Skyscraper Curse)’다. 199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74년 시카고, 30년 뉴욕처럼 그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초고층 빌딩이 솟아오르면 그 나라 경제가 거품이고 조만간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근거가 없지 않다. 금융위기와 초고층 빌딩은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 유동성 거품이다. 돈 풍년은 비합리적 성장과 가치평가를 부추긴다.

또 인간의 허영오만탐욕을 자극해 초고층 건물을 세우도록 한다. 연내 완공된다는 버즈두바이가 전형적 예다. 이 초고층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할 듯했던 거품 시기에 지어졌다. 당시 두바이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두 두바이 경제가 빌딩 높이(818m)만큼 욱일승천할 것이라고 믿었다. 세계적 은행들이 두바이에 돈을 빌려주려고 안달이었다.

하지만 지금 두바이 경제는 벼랑에서 떨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9월 이후 두바이 집값은 25% 곤두박질했다. 초고층 빌딩이 거품의 징조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자산 가격 폭락에 일찌감치 대비했을 수 있다.

초고층 빌딩은 경제적 쓸모가 불확실하다. 건축가의 능력이나 기술력을 자랑하는 수단인 경우가 많았다. 또 한 나라의 경제력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선전탑에 지나지 않았다. 거대한 장식품인 셈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중국은 어떨까. 세계 10대 초고층 가운데 다섯 개가 중국에 세워졌다. 범위를 넓혀 20대 초고층 빌딩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면 9개가 중국과 홍콩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은 경제성장률 전망에 비춰 이런 초고층 빌딩을 짓는 일은 합리적인 투자로 받아들여졌다.

중국에서는 거품 시기 ‘변종 초고층 열풍’이 불었다. 주식과 부동산으로 이뤄진 ‘부(富)의 성(城)’을 하늘 끝까지 쌓으려는 열풍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은 아니었지만 부의 성은 초고층 빌딩이나 마찬가지였다. 돈 거품의 부산물이었고 인간의 탐욕과 오만의 상징이었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은 중국 경제가 연 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국제유가가 계속 고공 행진할 것으로 봤던 것과 같다.

홍콩은 이미 초고층 저주에 시달리고 있다. 금융위기 여파로 홍콩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중국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중국 기준으로 성장률이 6% 이하로 떨어지면 침체나 다름없다. 5% 이하로 떨어지면 위기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5% 이하 성장의 위기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흥미로운 나라는 러시아다. 한 석유 재벌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러시아타워’를 짓다가 지난해 11월 중단했다. 허영과 야망·탐욕이 일단 정지한 셈이다. 그렇다면 러시아 경제는 위기에 빠지지 않을까. 아니라고 말하기 힘들다. 초고층 빌딩의 저주는 엄밀하지는 않다. 정확한 개념이라기보다 거품 시대 허영과 야망을 조롱하기 위한 풍자에 가깝다. 하지만 경험에 비춰볼 때 초고층이 경제의 앞날을 가늠해볼 수 있는 훌륭한 지표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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