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자 시너 뿌리고 화염병 던져 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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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로 밝혀진 지난달 20일 화재의 재구성이다. 검찰은 과학기법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화재 원인을 규명해야 했다. 조사가 어려울 정도로 농성 망루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발화 지점이나 직접적 화인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감식 결과를 검찰에 전달했다. 검찰은 망루 모형을 제작하고 실험으로 불이 번지는 장면을 재현했다. 경찰과 인터넷 TV가 촬영한 동영상은 실마리를 제공했다. 검찰은 외부 전문가의 도움으로 사실관계를 알아냈다. 9일 수사 결과 발표 땐 망루 모형에 시간대별 동영상까지 곁들이며 화재 발생을 설명했다.

9일 용산 사건 수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본부 정병두 본부장이 망루 모형을 놓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지난달 20일 오전 7시19분, 경찰특공대가 2차로 망루에 진입한 뒤 1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특공대원이 망루 외벽을 뜯어내려 하자 망루 4층 계단에 있던 농성자가 벌어진 틈으로 30초 이상 액체를 밖으로 쏟아붓는다.

동영상을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가 분석한 결과 복면을 한 사람이 시계를 찬 왼손으로 통을 잡고 있는 장면이 희미하게 보인다. 살수차 물이었다면 틈이 벌어진 순간부터 흘러내리거나 망루 계단 옆 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했다.

그러나 이 액체는 틈이 생긴 30여 초 뒤 공중에 흩뿌려졌다. 검찰의 자문을 받은 이창우(소방방재학부) 한국사이버대 교수는 “액체가 ‘주르륵’이 아니라 ‘콸콸’ 불연속적으로 쏟아진다. 살수포 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두 통 이상의 발화물질이 부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7시20분, 4층 창문을 통해 화염병 불꽃으로 보이는 불빛이 보였다. 불똥 여러 개가 3, 4층에서부터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이 교수는 “화염병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모양과 동일하다. 화염병이 수평면에 떨어지면 불길이 확 일어난다”고 말했다. 곧이어 조금 큰 불빛이 보이고 화염이 3, 4층에서 크게 번졌다. 검찰은 망루 4층 계단 부근에 있던 농성자가 특공대의 2차 진입을 막기 위해 화염병을 아래로 던져 망루 3층 계단에서 터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사실은 경찰특공대·소방관의 진술뿐만 아니라 연행된 농성자도 시인했다. 연행 농성자는 검찰 진술에서 특공대의 2차 진입 때 3층 계단에서 발화돼 불이 난 상황을 그림까지 그리며 설명했다고 한다. 얼마 안 돼 화염병이 터져 생긴 불꽃이 계단과 벽면에 다량으로 묻어 있던 시너에 옮겨붙었다. 불똥은 1층으로 흘러내려 바닥에 있던 시너로 번졌다. 불이 망루 전체로 퍼진 것이다. 28분까지 활활 타오른 뒤 망루가 무너졌다.

검찰 자문단인 윤명오(재난과학과)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람들이 탈출을 못하는 걸로 봐서 출입구나 바닥에서 화염병이 터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시너 화력 실험에서 물위에 형성된 얇은 시너 막으로도 화재가 일어날 수 있고, 계단에 뿌려진 시너를 타고 불길이 위·아래층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철재·이진주 기자 ,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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