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계의 종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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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종교, 원제 The World’s Religions
니니안 스마트 지음, 윤원철 옮김
예경, 848쪽, 4만2000원

최근 한 달간 중국 선불교 사찰 40여 곳을 답사하고 온 각화사 고우 스님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중국 불교에 매우 놀랐다. 시골의 작은 암자 입구까지 4차선 포장도로가 뚫렸고, 절 생활을 지망하는 20대 젊은이도 급증했다. 국가 차원에서 불교를 진흥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님은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국민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종교적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30∼40년 전 문화혁명 당시 불교를 초토화했던 것과 판이한 상황이다. 21세기 중국을 파고들려면 불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정보화·국제화 시대, 종교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게다가 종교는 수많은 국제분쟁에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평화의 전령이어야 할 종교가 되레 갈등의 씨앗으로 작용하는 구석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역사·문명·사상의 집결체인 종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갈수록 중요해진다고 지적한다. 마우스 하나로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는 오늘일수록 타종교에 대한 수용이 필수라는 것이다.

“범세계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우리가 한창 건설하고 있는 지구촌에서 여러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세계의 종교』는 이런 생각에 대한 저자 나름의 지침이다. 소위 ‘지구촌 다원주의’에 걸맞은 종교의 위상을 찾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세계 종교의 기원과 발전, 현대적 변용을 방대하게 훑고 있다. 원시시대 동굴벽화부터 20세기 신흥종교까지, 아프리카 토속종교부터 한국의 민족종교까지 포괄하는 ‘저인망식’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일본·동남아·태평양·아메리카·중동·그리스·로마·아프리카·유럽 등 지구촌 전역의 종교를 탐사했다.

신간은 항목 나열식의 종교 개론서, 혹은 종교 백과사전이 아니다. 인류의 발자취를 장식해온 숱한 종교에 애정을 기울이되 그 세세한 내용을 ‘현대’라는 화두를 축으로 엮어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의 역사’를 종교에 적용한 것이요, ‘문화와 사상의 결정체로서의 종교’를 문화로 풀어본 것이다. 목적은 단 하나,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로서의 종교가 아닌 인류의 절박한 숙제인 ‘문명의 화해’로서의 종교다.

예컨대 저자는 지구촌 분쟁의 불씨처럼 오해받는 이슬람의 변화를 예감한다. 현재 근본주의가 극성을 떨치는 것으로 비치는 이슬람도 서구 여러 국가에 진출하며 대화의 폭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와 서구 기독교가 만나는 접점 또한 확대될 것으로 점쳤다.

저자는 “남의 나막신을 신고 십리쯤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아메리카 원주민 속담처럼 타 종교에 대한 편견을 경계한다. 자신을 ‘영국 성공회 신자이자 불교 신자’라고 부르며 “어느 특정 종교만이 진리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그의 입장에 공감이 간다. ‘중국 문화에 대한 한국의 공헌’‘근대 한국의 종교’ 등 한국 관련 항목도 빠뜨리지 않았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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