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미자 '무게' 검증 성공…물리학 교과서 다시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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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퍼카미오칸데의 중성미자 검출기. 5만t의 물이 작은 통에 담겨 있다.

우주의 초기 모습을 밝혀줄 입자로 알려진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검증됐다. 지금까지 중성미자는 관측을 통해 질량이 있다는 점은 밝혀졌으나 이를 인공 중성미자를 통해 검증하지는 못했다.

한국.일본.미국.유럽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12일 중성미자의 질량을 확인할 수 있는 실험을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동시에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 김수봉 교수팀과 전남대 김재률 교수팀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이로써 중성미자의 질량 유무를 놓고 지금까지 벌어진 논쟁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중성미자의 질량 유무가 중요한 이유는 이렇다. 우주에는 수많은 별이 있다. 우주 하면 가장 먼저 별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우주에 있는 모든 별을 합해봐야 우주 전체 밀도의 겨우 1%를 차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까. 그 비밀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중성미자다. 중성미자는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다. 그러나 현재의 우주에는 1㎤에 102개꼴로 중성미자가 가득 차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다면 우주 질량 계산을 달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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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동안 우주를 설명할 때 사용했던 입자물리학 이론인 '표준모델'의 수정이 불가피해지게 됐다. 표준모델은 중성미자를 질량이 없는 것으로 가정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물리학 교과서도 새로 써야 한다.

김수봉 교수는 "중성미자의 질량이 실험을 통해 검증됨으로써 빅뱅 초기의 우주의 모습을 설명할 수 있는 길도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성미자의 질량 실험은 일본 도쿄 북방 쓰쿠바(筑波)시에 있는 고에너지 가속기연구소와 서쪽으로 250㎞ 떨어진 가미오카(神岡)시의 지하 1㎞에 있는 중성미자 검출기 간에 이뤄졌다. 검출장치를 지하 깊은 곳에 만든 것은 지상에서 만들어지는 번개 등 다른 잡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다. 가속기를 출발한 중성미자는 땅속을 투과해 검출장치로 향했다. 이번 실험에서는 중성미자의 질량이 없으면 151개의 중성미자가 검출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108개만이 검출장치에 잡혔다. 나머지는 중간에 다른 입자로 바뀌어 사라진 것이다.

김재률 교수는 "이렇게 숫자가 줄어든 것은 중성미자가 질량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입자가 다른 입자로 바뀌려면 질량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물리학에서 규명된 상태다.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장치는 5만t의 물이 담긴 수조다. 수조의 벽에는 고감도 감지기가 달려 있다. 중성미자는 수백조개 중 한개꼴로 물 분자에 부딪혀 물 원소의 핵에서 전자가 튀어나오게 한다. 이 전자는 극히 미약한 파란 빛을 내며 그 흔적을 남긴다. 그 빛을 검출하는 것이다.

중성미자의 질량이 실험적으로 검증되긴 했지만 아직 그 질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중성미자 분야는 노벨상의 광맥으로 통한다. 중성미자의 성질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노벨상이 주어졌다. 95년, 98년, 2002년 세 차례나 된다. 그만큼 우주 탄생과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물리학계에서는 이번 연구 결과도 유력한 노벨상 후보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전기를 띠지 않는(중성) 아주 작은 입자(미자)란 뜻이다. 방사성 물질의 붕괴, 태양 같은 별 내부의 핵융합, 그리고 초기 우주의 대폭발 과정의 부산물로 생성된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업쿼크.참쿼크.타우 등 12종류의 기본 입자 중 하나다. 태양이 만든 중성미자만 해도 손톱만한 지구 표면의 넓이에 1초 동안 500억개 정도를 퍼부을 정도로 많다.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며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의 99.9%가 지구를 투과해 지나간다. 사람 몸이나 물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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