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롱스타킹 전멤버 등 9개팀, 인디음반 '원데이 투어스' 공동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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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벌써 97년 하반기. 90년대를 관통하는 문제는 90년대라는 존재의 부재성 (不在性) 이라 할 것이다.

90년대는 자체의 역사보다 80년대의 잔영, 또는 대립체로만 인식되어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간 시점의 그림자만은 아니고 계속된 흐름 속에 새로운 사연을 축적해가는 생물과 같은 것. 냉철히 살펴 본다면 그속에 현재를 응축하고 다음 10년을 예고하는 씨앗이 발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 (성기완) '저항으로서의 록' 이라는 담론의 홍수와, 신촌 펑크밴드의 지상진출로 요약되는 9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사에 이같은 시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음반이 나와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성기완, 언더밴드 옐로우 키친과 배드 테이스트, 해산한 삐삐 롱스타킹의 전멤버 박현준.권병준 (고구마) 등 모두 9개팀이 함께 낸 인디음반 '원데이 투어스' 가 그것. 성기완에 따르면 이 음반이 문제삼는 대상은 언더음악인들에게 음양으로 존재하고 있는 자의식이다.

말로는 자유롭게 음악을 한다지만 실은 머릿속에 미리 도달할 지점을 설정하고 거기에 결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일부 밴드들이 펑크등 서구 언더밴드들이 초기에 들고 나온 특정 장르에 집착해 옛 곡조에 가사만 요즘 것을 얹은 음악을 하는 것이 그 예라는 것이다.

실제로 '원데이 투어스' 에는 그런 자의식을 탈각해보려는 시도들이 엿보인다.

힙합에서 인더스트리얼까지 9곡 모두 다른 다양한 장르의 곡이 수록돼 있다.

이중엔 '라면을 끓이며' 처럼 장르를 구분하기 힘든 전혀 새로운 분위기의 음악과 상업밴드 시절의 흔적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 시절 억눌렸던 표현의식을 힘있게 터뜨리고 있는 '구토' (박현준) 등 새로운 움직임도 일부 발견된다.

이같은 의도가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될 만큼 이들의 음악적 화법이 튼튼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이들이 문제삼는 자의식의 존재 여부를 놓고 기존 언더음악인들과의 논쟁도 예상된다.

그러나 이같은 문제의식이 최근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으론 정체상태에 빠져있는 언더음악계에 하나의 활력소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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