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 53년 약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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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올해로 창업 53년째인동차 연산 2백10만대 체제를 구축해 세계 10대 자동차 메이커로 도약한다.

사업다각화에도 힘써 95년 5조7천억원인 매출을 2005년 20조원으로 늘린다.

" 지난해 5월 기아그룹이 발표했던 중장기 경영전략의 주된 내용이다.

대우자동차를 제치고 상당기간 국내 자동차 2위자리를 고수했던 기아의 사세확장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올해로 창업 53년째인 기아그룹은 1944년 창업주인 고 (故) 김철호 (金喆浩) 씨가 설립한 모기업 기아자동차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52년 최초의 국산 자전거인 '3000리호 자전거' 를 생산했으며 이어 오토바이 (61년).삼륜화물차 (62년).4륜화물차 (71년).소형승용차 브리사 (74년) 등으로 생산 차종을 넓혀왔다.

76년에는 아시아자동차도 인수했다.

73년 김철호씨가 타계하며 장남 김상문 (金相汶) 씨가 기아의 경영권을 이어받아 피아트등을 조립생산, 판매했으나 70년대말의 오일쇼크에 따른 극심한 자동차 불황에다 정부의 자동차산업 통폐합조치로 승용차 생산을 못하게 되며 일대 위기를 맞았다.

80, 81년 2년동안 기아는 무려 5백억원의 적자를 내며 회생불능 상태에 빠지는 듯했다.

81년 10월 김상문씨가 회사 정상화를 위해 경영에서 손을 떼고 당시 기아기공 사장이던 김선홍 (金善弘) 현 회장에게 경영전권을 위임하면서 기아는 회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직원들이 자진해 상여금을 반납하고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 노력을 기울였다.

81년 국내에선 생소했던 승합차 '봉고' 로 이른바 '봉고신화' 를 낳으면서 기아는 경영정상화에 성공했다.

특히 봉고 판매량이 크게 늘었던 83년 한햇동안 2백6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83년 9월 일본 마쓰다.이토추와 자본제휴한데 이어 86년 7월 미국 포드와 자본제휴해 그해 12월 프라이드를 생산, 승용차 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콩코드 (87년).포텐샤 (92년).스포티지 (93년).엘란 (96년) 을 잇따라 생산하며 차종을 늘렸고, 올들어 대형차 엔터프라이즈를 내놓았다.

88년 10월 자동차생산 (누계) 1백만대를 돌파한데 이어 96년에는 생산량 5백만대를 넘어섰다.

95년 10월에는 수출 1백만대도 기록했다.

한편 86년 기아특수강을 인수하고 89년 기아경제연구소, 94년 기아할부금융을 각각 설립하는등 계열사도 크게 늘려왔다.

최근 들어서는 해외사업도 대폭 강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0월 생산에 들어간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 세피아의 현지조립 모델인 국민차 '티모르' 는 일본차와의 가격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어 터키.중국.러시아등에도 조립공장을 건설중이다.

그러나 내수쪽에서는 경쟁업체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유규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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