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콕 집어 … 현장 중시한 MB화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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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핀셋으로 집어내듯 현장의 사례를 적시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화법이 주목받고 있다. ‘××에 사는 ××이야기’ ‘△△공단의 △△기업’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지적하는 화법이다. 이 대통령이 5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신빈곤층의 사각지대를 찾아내라”며 언급한 ‘인천 봉고차 모녀’ 스토리는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내가 들은 게 한 모녀가 같이 사는데 헌 봉고차가 집에 한 대 있어서 그것 때문에 (기초)수급 대상자가 안 된다고 하고, 모자보호법 대상도 안 된다고 한다. 봉고차가 10년 이상 지나야 (기초수급)해당이 된다고 하는데 허점이 많은 것이다. 구청에서 나가서 점검을 했다고 하는데… 잘 챙겨야 하는데….”

이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로 ‘인천에 사는 봉고차 모녀’는 단숨에 신빈곤층의 사각지대를 일컫는 상징어가 돼 버렸다. 이번 사례는 공무원의 현장 감각을 북돋우기 위해 이 대통령이 작심하고 꺼낸 카드다.

청와대의 정책파트 고위 관계자는 “금융·실물위기가 신빈곤층 확산 등 사회위기로 심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필요계층에 잘 전달되는지 점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필요한 곳에 돈이 지원되지 않는 대표적인 동맥경화 사례를 통해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으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모녀 사례엔 “단순히 지원하는 것보다 제대로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는 이 대통령의 생각이 담겨 있다고 참모들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나 당선인 시절부터 입버릇처럼 “도대체 나에게까지 노인교통수당을 지급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참모들에게 말해 왔다. 얼마 전까지 65세 이상 노인 모두를 대상으로 정부가 분기별로 3만여원씩 지급해 온 교통수당을 두고 한 이야기다. 이 대통령이 “소득이나 재산 수준과 무관하게 교통수당을 일률 지급하는 것은 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탁상 행정의 대표적 사례”라며 불만을 표출해 왔다는 것이다. 한 참모는 “이 대통령은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현장을 찾아 다니며 정부의 돈이 제대로 쓰이는지 엄밀하게 체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을 콕 집어 말하는 이 대통령의 화법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선인 시절 언급했던 ‘대불산단의 뽑히지 않는 전봇대’는 규제개혁을 상징하는 화두가 됐다. 또 ‘자동차 하루 220대에 10여 명이 근무하는 톨게이트’는 공기업 비효율의 상징이 됐다. ‘근로자를 해고하지 않고 휴직 처리하는 청주의 프레스 공장’은 노사 화합의 대표적 사례가 됐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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