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넘어 달리기의 참맛 다시 알게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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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라톤 용어 중 ‘서브 스리(sub-3)’라는 말이 있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들어오는 것을 뜻한다. 웬만한 훈련 없이는 젊은이라도 쉽게 넘기 힘든 벽이다. 그런데 60대 나이에도 이를 가뿐히 통과하는 사람이 있다. 1974년부터 10년간 한국 신기록(2시간 16분 15초)을 보유했던 마라토너 문흥주(61)씨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지 33년이 된 지금, 그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 8일 홍콩에서 열리는 국제 마라톤대회 ‘지상 최대의 레이스’에 출전하는 것이다. 유일한 60대 참가자다. 현역 때에는 한국 신기록까지 세웠던 문씨지만 은퇴 뒤 마라톤을 꾸준히 하진 못했다. 교직을 거쳐 84년부터 2005년까지 국군체육부대에서 감독을 맡는 등 후배들을 키우는 일에 치중했다.

“훈련을 지도하면서도 정작 내 몸에는 소홀했어요. ‘그래도 내가 한때 선수였는데’ 하는 자만 때문이었죠. 다른 40·50대 남자들처럼 술·담배를 달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2005년 6월 건강검진이 ‘다시 달리는 인생’의 계기가 됐다. 평소 ‘몸이 무겁다’ 정도로만 느끼고 있었는데 수축기 혈압이 160까지 올라 당장 약물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건강을 되찾겠다는 생각에 과거 선수시절처럼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한 시간 반씩 뛰기 시작했다. 처음엔 100m도 숨이 가빠 단숨에 달리지 못했다. 조금만 뛰어도 근육과 관절에 무리가 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에 뛸 코스를 두 세 번으로 나눠 강도를 조절했다. 이듬해 3월, 연습을 시작한 지 9개월 만에 동아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50분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자신도 예상하지 못 한 성과였다.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 뒤 중앙마라톤을 비롯한 국내 대회에 꾸준히 도전했다. 지난해엔 하프 코스를 포함해 36회나 출전했다. 기록도 44분대까지 단축시켰다.

“선수 때도 몰랐던 마라톤의 재미를 느꼈죠. 육체적으로도 좋지만 달리면서 머릿속 복잡한 찌꺼기들까지 털어내니까요. 새 기록을 내는 것은 오히려 덤이죠” 하지만 욕심은 더 커졌다. 인터넷 마라톤 카페에서 홍콩 마라톤 대회에 대한 정보를 보자마자 ‘이거구나’ 싶어 바로 신청했다. 대회가 일반인과 선수 부문으로 나뉘지만 문씨는 일반인 자격으로 선수 부문에 출전할 계획이다. 그는 국가대표 시절에도 해외 경기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승 욕심보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겨뤄보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대회를 앞두고 꾸준히 현지 코스를 분석하고 날씨를 체크한다. 2시간 39분이라는 목표도 세웠다.

“나이 들어도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더구나 국가대표라면 요즘처럼 사는 게 힘든 국민에게 활력을 줄 수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제는 죽을 때까지 뛸 겁니다. 한 번 마라토너는 영원한 마라토너니까요.”

글=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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