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옷차림이 수상 - 퇴폐보다 낙천성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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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금은 세기말, 아니 세기말이 열배나 농축된 천년의 끝이다.

겨우 한해가 바뀌는 연말에도 슬그머니 흐트러지고픈 욕망이 생길 정돈데 이즈음이면….

어쩌면 우리의 삶이 지독한 퇴폐, 혹은 허무에 물들 만도 하다.

그 분위기를 가장 예민하게 반영하는 패션의 현상으로서 그 징후를 살펴본다면…글쎄…다.

지금은 데카당스가 지배하던 19세기말과 달리 왠지 조금은 경쾌해 보인다.

단순히 백년이 아니라 천년이 바뀐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동아시아 - 태평양 시대가 열리리라는 뿌듯한 전망 때문일까. 아니면 딱딱한 이성의 시대를 보내고 촉촉한 감성적 문화의 시대를 맞으리라는 미래학자들의 복음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어느 복식사 연구가는 한 세기가 마감할 무렵에는 인체의 부위 중 엉덩이를 강조하는 옷차림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1780년대, 즉 18세기말에는 드레스의 뒷부분을 살짝 부풀린 로브 아 랑글레즈 (robe a l' anglaise)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19세기말 서유럽에서는 드레스의 엉덩이선을 코르셋 버팀대로 볼록하게 올린 뒤, 그 위에 풍성한 비단 리본이나 코르사주 (corsage) 를 장식한 토르뉘르 (tornure) 를 달기도 했다.

이러한 취향은 극단적으로 가슴과 엉덩이의 볼륨이 과장된 에스 (s) 자 모양의 우스꽝스러운 실루엣을 낳기도 하였다.

1990년대 들어 이세이 미야케와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토르뉘르 드레스를 응용한 전위적인 기성복 디자인을 이끌어 내었다.

한 시대가 끝나는 시간이 오면 사람들은 엉덩이에 큰 뿔이라도 달고 싶은 일탈을 꿈꿀지도 모른다.

요즘 나타나는 세기말적 패션 현상으로는 '키치' (kitsch) 스타일과 '자아도취' (narcissism) 스타일이 있다.

둘 다 자연스러움과는 먼 인위적 특성이 강하다는 점이 공통분모다.

'저속한 모방.졸속.아류' 를 뜻하는 키치가 미술사의 용어로 등장한 것은 거의 백년 전, 즉 지난 세기말이다.

이른바 고상한 귀족 스타일을 모방하던 부르주아 졸부들의 감각을 빈정대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키치는 부자연스런 혼합을 통해 개성적인 악취미를 표현하려는 패션 흐름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뒤섞고 어울리지 않는 것끼리 연결시키며 조작을 즐기는 것이다.

뱀가죽 바지에 코르셋처럼 허리를 조이는 블라우스, 그리고 그 속에 비치는 엷은 레이스, 굽 높은 팝오렌지색 에나멜 구두, 그리고 벼락을 맞은 듯 흐트러진 머리. 이처럼 괴상하고 야하며 유머가 양념처럼 번득이는 스타일이 키치 패션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확실하게 튄다' 는 점에서 해방감과 우쭐한 기분을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한 악취미는 캐릭터 캐주얼이라는 장르로 자리 매김되어 패션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또 하나의 세기말적인 유혹은 자기 환상에 탐닉하는 나르시스 스타일이다.

컴퓨터통신.인터넷 등이 제공하는 온갖 정보와 간접체험으로 세상을 간파해버린 젊은이들은 점차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리고 있다.

공주패션 혹은 왕자패션의 징후도 극심한 자기애가 빚어낸 마음의 병이다.

이제 자신을 유명 스타와 동일시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본능인 듯하다.

단순함 속에서 항상 전위를 표방해 온 디자이너 헬무트 랑은 미래의 패션을 나르시시즘으로 예견한다.

"옛날에는 남의 눈을 위해 옷을 입었지만 이젠 자신에게만 관심을 기울인다.

앞으로의 패션은 남에게 자신의 성적 매력이나 고귀한 신분을 옷차림으로 포장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과 정체성 (正體性) 을 극대화하는 나르시시즘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 최근의 자아도취형 패션은 19세기말 유럽의 지식인 사회를 휩쓴 댄디이즘 (dandyism) 과 겹친다.

보 브뤼멜, 보들레르, 오스카 와일드 등으로 대표되는 댄디들은 자신의 완벽한 외관을 통해 통속적인 사회에 포섭되지 않는 자기 정체성과 이상미를 웅변했다.

이러한 신귀족주의 태도는 요즘의 귀족풍 패션으로 이어지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서유럽의 문화계를 강타한 동양문화의 충격은 최근 흐름과 겹치는 트렌드다.

일본의 목판화가 인상주의 미술에 결정적인 힌트를 주었고, 벨 에포크 (1차 세계대전 이전의 40여년간 호경기 시절)에는 폴 푸아레의 아르데코풍 드레스가 일본.중국등 동양의 복식에서 영감을 얻었다.

장 폴 고티에, 존 갈리아노, 로메오 질리등 세계 패션의 귀재들은 다분히 동양문화에 근접한 의상을 보여준다.

동아시아의 도복이나 승복이 환경친화적인 드레스의 모티프가 되고 있으며, 한국을 포함한 중국.몽고.일본 등 동북아시아의 의생활 전통이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강력한 영감으로 선택되고 있다.

공주 스타일의 신화를 일구어낸 '오브제' 의 올 추동복 컬렉션은 조선시대 양가집 규수 혹은 매혹적인 기생의 패션 센스를 가장 진보적인 여성복으로 되살린다.

쪽을 찐 트레머리, 엷게 비치는 반투명 소재의 치마, 허리춤이 살짝 엿보이는 상의, 끈으로 묶어 치켜올린 치맛단은 너무나 예스러우며 섹시하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세기말은 단순히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연결되는 큰 순환고리의 원점이다.

결국 보내고 맞이하는 동양의 순환론적인 지혜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예견하는 듯하다.

지난 세기말에 건축된 파리 에펠탑의 카운트다운 전광판이 묵은 천년대를 추억하며 새로운 천년의 희망을 재촉하듯이. 김형암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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