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개 짖는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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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4.19혁명의 주역이었던 한 중년사내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자 군부대 근처에'개 목장'을 만든다.물론 보신탕용 개를 사육하기 위해서다.부대에서 나오는'짬밥'으로 개를 키울 수 있어 밑천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한데 한밤중에 여러 마리의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대자 문제가 생긴다.장병들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사료공급 중단을 통보해온 것이다.사내는 궁리끝에 방법을 생각해낸다.남들이 하는 성대절제는 수술도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드니 강아지때 쇠꼬챙이로 고막을 터뜨리기로 한 것이다…. 80년대초에 발표된 박범신(朴範信)의 중편소설'그들은 그렇게 잊었다'의 줄거리다.'정의와 순수의 실종'을 주제로 삼은 이 소설의 인물설정은 픽션일는지도 모르지만 개를 짖지 못하게 하려는 주인공의 방식은 작가의 직접 취재에 의한 사실 그대로다.실제로 도시 변두리나 궁벽한 시골 곳곳에 세워져 있는'개 목장'들은 인근 주민들의 항의 때문에 개를 짖지 못하게 해야 한다.대개는 성대절제수술을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처럼 쇠꼬챙이로 고막을 터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보신탕용 개 뿐만이 아니다.아파트 같은 곳에서 애완용 개를 기르려면 성대를 절제해 짖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필수조건이다.이웃의 항의를 견뎌내지 못할게 뻔하기 때문이다.동물애호가협회 따위에선 기겁을 하겠지만 외딴 곳에서 혼자 산다면 몰라도 이웃과 밀집해 산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중앙아프리카 원산의'바센지'라는 개처럼 짖지 못하는 개도 있지만'짖지 않는 개는 개가 아니다'는 생각은 보편화 돼 있다.동물학자들은 개가 짖는 것은'가축화의 결과'라고 한다.만약 인간이 개를 가축으로 키우지 않았던들 지금처럼 짖지는 못했으리라는 것이다.그렇게 보면 인간의 삶과 개가 짖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셈이다.

그러니 개를 짖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견권(犬權)유린이란 소리를 들을 법하다.하지만 그것이 이웃에 고통을 준다면 문제는 달라진다.한 주부가 개 7마리를 키우는 이웃을 상대로'사육금지와 2천만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해가 간다.판결이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심산유곡에'개 동네'를 만들어 저희들끼리 살게 하는 방법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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